박두식 논설위원 <a href=http://db.chosun.com/man/>[조선일보 인물 DB]<

최근 유럽인들 사이에서 폴란드는 ‘트로이의 목마’로 불리곤 한다. 미국이 유럽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함정이 바로 폴란드라는 것이다. 아예 말(馬)도 못되는 ‘트로이의 당나귀’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폴란드가 이처럼 같은 유럽 나라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게된 것은 이라크 전쟁 때문이다. 폴란드는 미국·영국과 함께 이 전쟁을 이끄는 3번째 주역쯤 된다. 이라크 내 3개 작전 지역 중 하나인 중부전선을 맡고 있는 게 ‘폴란드 사단’인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폴란드는 미국에 맞서는 소련의 전초기지였다. 냉전으로 유럽이 동·서로 나뉘어 있을 때, 서방진영의 군사동맹 나토(NATO)에 대항하는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안보체제가 폴란드의 수도 이름을 딴 ‘바르샤바조약기구’였다. 소련의 대(對)서방 전초기지에서 ‘미국의 당나귀’로 변신한 셈이다.

폴란드의 변신에 대한 답은 수난으로 가득했던 근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폴란드 만큼 조국이라는 말 속에 비애와 눈물이 가득한 나라는 많지 않다. 쇼팽이 조국에 도착하자마자 땅바닥에 입을 맞추며 눈물 흘렸던 나라가 폴란드이고, 퀴리 부인이 러시아의 차르를 통치자라고 대답하며 통곡했던 것도 이 나라다.

1795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러시아에 의해 나라가 3개로 쪼개진 이후 거의 200년을 폴란드는 늘 조국의 독립을 놓고 씨름했다. 러시아와 독일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놓인 지정학적 위치가 폴란드 비극의 출발이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 속에서 21세기를 맞은 폴란드의 전략은 ‘폴란드의 미래는 유럽 속에 있지만, 안보는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을 안보 파트너로 삼겠다는 국가적 차원의 결단이다. 이라크 참전이나 유럽주둔 미군의 폴란드 배치는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우선 폴란드는 내년에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예정이다. EU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들이 독일과 프랑스다. 이 두나라 모두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요즘 유럽 분위기에서, EU 가입을 앞둔 폴란드가 ‘미국의 당나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일대 도박이다.

폴란드 국내 여론도 결코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폴란드 지도자나 국민이 파병으로 결론지은 것은 미국의 안보파트너가 되는 데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고, 거기에는 엄청난 도박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석유 이권과 폴란드 군(軍)의 현대화 같은 현실적 이익까지 예상되자 인구 3900여만명,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안팎의 폴란드는 ‘당나귀’라는 조롱쯤은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게 추가 파병을 요청하면서 ‘폴란드 사단’을 예로 들었다. 폴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역시 ‘파병을 해야 할 이유(do)’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don’t)’는 양쪽 모두 길기만 하다. 두 나라를 가르는 차이는 미국의 요구를 위기이자 기회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저 느닷없이 닥친 성가시고 힘든 문제로 생각하느냐는 인식에 있다. 한국에도 이번 결정은 국가의 진로와 관계된 사안이다. 그런 만큼 우리의 안보 현실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솔직한 성찰과 검토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여기서 명분론은 잠시 접어두자. 이 문제는 철저한 현실적 판단과 실용적 태도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전(反戰)이냐 참전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파병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예상되는 득과 실이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다뤄야 할 문제도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파병이라는 선택의 대가가 무엇이며 비용 분담은 어떻게 되는지, 파병하지 않았을 때 한·미 동맹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인지, 국익(國益)을 이루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두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