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경

요즘 포도주는 마치 보약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달 외신은 저명한 과학 잡지인‘네이처’발표를 인용하면서 포도주 성분 중의 하나인‘레스베라트롤’이 생명을 연장시키는 주성분이라고 보도했다. 지난주에는 그리스산 포도주가 흡연의 해악을 줄여주는 데 효과가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평소 술과 담배의 해악을 설명하는데 진료의 많은 시간을 쏟은 필자로서는 뒤통수 맞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면 앞으로 환자들이 담배를 피워도“포도주 먹으면 돼요”라고 말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포도주를 갖고 도대체 무슨 연구를 했는지 찾아보았다.

우선‘네이처’지에 실린 논문을 봤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생물을 금식시키거나 영양분을 줄여 공급하면 오래사는 경향이 있는데, 생활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발견되는‘레스베라트롤’이 이러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내용이다. 즉, 이 연구는 인간에 적용한 실험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포도주를 많이 먹으면 장수 한다는 해석은 논리 비약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 셈이다.

그리스 포도주가 흡연 해악을 줄여 줄 수 있다는 연구는 그리스 포도주가 유통될 가능성이 높은 아테네대학에서 이뤄졌다.

그것도 단지 16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정식으로 논문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유럽심장
학회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것이었다.

도자기로 치면 초벌구이인 셈이다. 그러나 보도를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포도주를 마시면 되겠네”하고 무심코 생각할 것이며“포도주는 장수음식”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입력됐을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보도내용을 안주로 떠올리며 포도주 한두 잔을 더 걸친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이들의 훌륭한 연구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의학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는 바로 논리 비약이다. 실제로 아테네대학 연구자들조차 일반사람에게 포도주가 무조건 좋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의 역설’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를 기름지게 하는데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미국이나 다른 유럽 사람보다 적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포도주를 먹으면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자.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는 대체로 어떤가.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식사를 한다. 자연스레 폭식을 피한다. 또한 식사를 하면서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운동 등 여가시간을 건강을 위해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은 무엇을 먹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식습관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한편으론 프랑스 사람들한테 심장병이 적을지 몰라도 상대적으로 과음으로 인한 간질환이 많다는 사실도‘프렌치 패러독스’의 또 다른 역설일 것이다.

요즘"뭐 먹으면 좋다"는 얘기가 홍수를 이룬다. 포도주 먹으면 좋고, 마늘을 먹으면 좋고, 생선을 먹으면 좋고,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좋다 등 급기야 뭘 먹어야 좋을
지도 헷갈린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는 골고루 먹는 것이 제일 좋으며, 어떤 건강식품이나 약도 적절한 소식만큼 장수에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더 확실한 것은 나쁘다고 알려진 과음과 흡연은 정말로 몸에 해롭다. 이렇게 말해도 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는 계속 나올 것이다. 올해안에 또 포도주가 몸에 좋다는 얘기가 나오거든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자. ‘보졸레 누보(그 해의 햇와인)가 나올 때가 된 모양이지.’

(윤도경·고려대 의대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