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까지 8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경남 마산시 해운동의 상가건물 해운프라자 지하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A군(18·고3)은 만 이틀이 지난 14일에도 당시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A군이 자신이 다니는 학원 교무부장 정시현씨(27), 정씨의 약혼녀 서영은(23)씨와 함께 해운프라자 지하 3층 노래방 ‘데몰리션’을 찾은 것은 해일이 이 건물을 덮치기 한 시간 전 쯤인 12일 오후 8시쯤.
정씨는 추석연휴인 데도 학원에서 공부하던 A군을 격려하기 위해 서씨와의 저녁식사 자리에 데려갔고, 세 사람은 해운프라자 주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함께 문제의 노래방에 갔다.
1시간쯤 지났을까.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노래 몇 곡씩을 불렀을 때 갑자기 노래방 내부가 어두워지면서 기기의 작동이 중단됐다. 정전이었다. 2~3초 후 다시 전기가 들어왔으나 이후 몇 차례 이 같은 현상이 반복돼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세 사람은 노래방을 나와 내부 계단을 이용, 차량이 주차된 지하 1층 주차장으로 갔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서씨의 요청에 세 사람은 화장실이 있는 지하 2층으로 내려 갔고, 서씨가 지하 2층 로바다야키 내 화장실에서 나올 즈음 로바다야키 종업원들이 “물이 들어오니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지하 1층 주차장으로 다시 올라갔다. 지상의 주차장 입구에는 이미 물이 흘러들지 않도록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다. 차를 몰고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정씨는 차내에서 세 사람의 휴대전화를 비닐봉지에 싼 뒤 차에서 내려 좌측 벽에 몸을 붙인 채 지상으로 난 너비 6m, 길이 7~8m의 반원형태 진출입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앞장 선 정씨를 서씨가 뒤따랐고, A군이 제일 뒤에 섰다.
몇 걸음 옮겼을 때 바닷물이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세 사람 모두 중심을 잃고 물살에 휩쓸렸다. 다행히 A군은 지하 1층에 주차된 차량을 간신히 붙잡았고, 진출입로 좌측 벽에 몸을 기댄 채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7~8m에 불과한 거리였지만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어요.” 지상에 빠져나왔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씨와 서씨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조금 뒤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A군과 비슷한 시각에 빠져 나온 듯한 한 남자로부터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며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씨를 지칭한 것 같다고 A군은 말했다.
서씨는 13일 오후 9시쯤, 정씨는 14일 새벽 각각 지하 2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는 서씨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수 차례 원목에 맞고 벽에 부딪친 듯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정씨와 서씨는 내년 봄 결혼할 예정이었다. 서씨의 아버지(51·포항공대 교수)는 “미국에 있는 아이 엄마가 돌아오면 16일쯤 두 사람의 합동영결식을 갖고 합장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운프라자에서 발견된 시신에는 노래방 주인 박모(33)씨와 아르바이트종업원 문모(20)씨, 김모(25)씨가 포함돼 노래방 관련자들이 5명이나 됐다. 나머지는 지하2층 로바다야키 아르바이트종업원 정모(여·21) 김모(여·20)씨와 이 건물 주차관리인 진모(62)씨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