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의 성패를 가를 대형 현안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이를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할 집권당은 쪼개지기 일보 전이고, 대통령과 야당의 관계는 험악하기 짝이 없어 하반기 국정의 힘든 고개를 어떻게 넘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전략과 직접 관련된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놓고 도대체 집권세력의 입장이 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어차피 ‘대통령당’이 될 민주당 탈당파 핵심인사들이 파병반대를 외치고, 민주당 잔류파는 두고보자는 식이다. 과반수 야당은 ‘이젠 총대 안 멘다’고 뒤로 물러섰으니 이 문제가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태풍 ‘매미’의 뒷수습은 정부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피해지역의 흉흉한 민심을 다독이고 최악의 흉작이 예상되는 벼농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일을 집권당의 누가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WTO 각료회의에서 우리 농업에 직접 타격이 오는 결정이 날 경우 무역우선주의 대 농업우선주의의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어려운 갈등은 결국 정치로 수렴해야 할 문제지만, 지금 그 일을 할 집권당이 있는가.

집단 린치 사태로 번진 전북 부안 사태에선 집권당의 분열과 지리멸렬이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마저 되고 있다.

당장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내년 예산도 큰 문제다. 국방비 증액과 타분야 동결 등 그러잖아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부 예산안에 태풍이라는 변수가 겹쳤다. 하지만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야당의 갈등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황에 있다. 집권 세력의 누가 나서서 예산만이라도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정치개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집권측의 책임 방기일 뿐이다. 여든 야든, 신당이든 민주당이든 국정책임이라도 자임하는 쪽이 빨리 나와서 얽힌 현안들을 정리해주길 바라는 것이 국민의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