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를 일단 거부하면서 김 장관을 ‘코리안 드림(Dream·꿈)의 상징’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경우를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김 장관은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군수 선거에도 당선됐으니, 그를 장관으로 기용한 대통령이 치켜세워준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이 생각하는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 ‘장관 자리’인가에 대해선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꿈과 목표를 제시해 사회를 끌고 가는 자리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제시한 꿈의 표상이 이런 것이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고학으로 큰 기업을 일으킨 경영인, 어디 이름 모를 연구실에서 세계적 신기술을 개발한 연구원, 독창적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성공시킨 젊은이, 고난 끝에 세계적 스타가 된 스포츠맨 등 각계의 빛나는 인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란 호칭이 어떤 장관을 부르는 이름이 되어버린 것은 지금의 이 시대에서, 더구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볼 때 퇴행적이고 진부한 느낌이 든다.
현재 우리는 국경이 무너진 세계 시장에서 촌각을 다투는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나라의 지표나 꿈은 관(官)보다는 민(民), 자리보다는 업적, 정치보다는 생산, 과거보다는 미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입시생들은 의대로, 대학생들은 고시로 몰리고 있다. 고시 준비생이 10만명을 넘는다는 추산까지 나왔다. 내년 총선거 경쟁률은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의사가 되고 국회의원·판사·검사·고위공무원 되는 것이 코리안 드림이라는 풍조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넘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코리안 드림은 아무리 이뤄보았자 ‘우물 안 꿈’일 뿐이다. 이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 우리의 실정이다. 그래서 여기에 던져진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 같지 않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