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비밀결사 칠성대(七星隊) 동지들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일제 말기 징병으로 일본군에서 훈련받던 중 해방을 맞았던 이재우(李在雨·79·경북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씨.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일본군 병영 내에서 삼엄한 감시의 눈을 피해 조직했던 항일비밀결사 ‘칠성대’ 동지들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이씨는 1944년 10월 대구에서 일본군 80연대로 징병된 후, 울산에 주둔하며 해외 출전을 기다리고 있던 일본 육군 2775부대에 배치됐다. 함께 징병돼 배치된 사람들은 주로 대구, 달성, 의성, 영천, 경주 등 경북 일대 출신이었다.
“머지 않아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풍문이 이미 나돌고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일본군을 탈출, 광복군에 입대하겠다는 동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2중대 1소대 선임하사 손선원(孫先源)씨가 뜻을 함께 하는 애국청년들을 상대로 항일비밀결사 조직에 들어갔다. 1대1 포섭으로 모집된 21명이 1945년 4월 7명씩 3개조로 편성된 ‘칠성대’를 결성했다.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태극기를 만들고 애국가를 배우며 탈출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상해임시정부를 거쳐 광복군에 들어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1945년 8월 울산 앞바다에서 어선을 타고 탈출을 꾀하던 무렵, 일본 패망과 조국 해방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씨는 “기쁨이 앞서기는 했지만 준비해 온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아쉬움도 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칠성대는 해산하고 대원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해방 후 좌우대립에 이어 6·25사변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대원들 간에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이씨는 “대구 출신 박성장, 달성 동촌 출신 유병태, 영천 고경 출신 손병주, 경주 아화 출신 황윤수 등 동지들을 잊을 수 없다”며 “본인 또는 가족이 꼭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고 간절히 당부했다. 연락처 (054)76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