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가 지겹다. 요즘 우리를 지겹게 만드는 것이 비뿐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온실처럼 유리로 만든 집에 사는 사람은 남에게 돌 던지기를 자제한다. 이웃이 돌을 마주 던지면 제 집 피해가 더 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유리집에 살면서 돌집에 사는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정권 교체기는 세상을 바꾸는 호기다. 지난 시대에 기득권을 누린 계층에는 부패·무능한 사람들이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기에 ‘개혁’하겠다는 데 군말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세대나 지역을 잣대로 가름하는 것은 무리다. 그것도 새로운 집권층이 개인적 도덕성, 집단적 윤리성이 높다면 수긍이 갈 수 있다.

그러나 무경험을 참신으로, 뇌물 챙기기의 기회가 없었던 것을 순수로, 선전선동적 구호를 정책 아이디어로, 오기를 정책 일관성으로 착각한 이른바 ‘코드 맞추기’가 인사원칙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정상배들의 뇌물공세에 쉽게 무너진다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유리집처럼 투명해야 할 청와대가 측근의 비리를 감싸고, 비리 추적자를 적반하장격으로 옭아 투옥하고,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떠드는 언론을 나무랐다. 그 순간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개혁’의 기치는 넝마처럼 바람기를 잃었다.

줄리어스 시저(BC 100-44)는 금전비리에 연루되었다고 로마 시민들의 입방아에 오른 부인에 대해 “내 아내라면 의심조차 받아서는 안 된다”고 결별했다. 가족의 비리의혹을 거론한 언론을 오히려 고소하고 유흥업주와의 유착거래를 감싸는 언행과는 사뭇 다른 지도자상이다. 자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엄정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엊그제 방송의 날 기념 리셉션에서 대통령은 “언론이야말로 절제가 꼭 필요한 기관”임을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인권 유린의 경향이 있다. 조세처럼 강제로 거둬들인 시청료 수입과 엄청난 광고수입을 가지고 말없는 다수 국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며 뉴스를 왜곡하는 일부 방송매체는 공정성을 잃은 지 오래다. 또 틀린 말이기도 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없기 때문이다.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정부의 기본은 국민여론이므로 국책의 제일목표는 여론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다. 나에게 선택이 주어진다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보 없는 신문을 택하는 데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을 만하다. 반면 우리 지도자는 대통령 권한행사로 언론 길들이기를 말하곤 한다.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아끼고, 한 말은 반드시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10년 내 ‘자주국방’ 주장을 폈다. 그러나 국회에 상정된 국방비는 당초보다 GDP 대비 0.1%포인트 인상에 그쳤다. 고작 1조4000억원 늘어난 자금으로 얼마만큼 군비증강이 되겠는가. 국민 자존심 콧대가 높은 EU국가들도 모두 NATO라는 집단체제의 틀 속에서 자국의 안보를 지키고 있다. 미국과의 안보 공조는 우리가 비용 적게 들이고 국방을 유지하는 첩경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비용 적게 들이고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 속에 머물든지, 비용 더 들이고 스스로 핵 개발을 선언하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김정일의 장단에 춤출 까닭이 없다.

한 가지 반가운 것은 노사분쟁에 있어 정부자세의 전환 조짐이다. 올 들어 세 번째 파업하는 화물연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쪽으로 선회한 듯싶다. 정부가 시행착오를 끝내고 다수 국민이 고대하던 방향으로 새롭게 정책기조를 바꾸는 전기이길 바란다.

국민은 줄기찬 비에만 지쳐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잦은 발언에도 지쳐 있다. 가뭄 끝에 오는 비라야 반갑다. 유리집에 살며 말을 아끼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병주·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