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 많던 김두관 행자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표결에서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이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다수당에 의한 횡포라는 말은 듣지 않게 됐다. 한나라당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아닌 행자부장관의 해임안을 건의한 데 대하여 일부는 도끼로 모기잡은 꼴이라는 비판도 한다. 행자부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 이유인 치안 부재의 총체적 책임과 총선 관여라는 정치적 책임을 물으려면 보다 고위직에 대해 해임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사퇴 권고는 구속력이 없고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권고는 6개월밖에 안 된 국정 결과를 추궁하기엔 이르다는 이유에서 행자부장관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이 한나라당 설명이다. 사실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하여 국회의 해임건의안 처리를 방해했다면 이는 삼권분립을 위반한 것이요, 권한 남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에선 행자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는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며 해임안은 국회의 건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를 무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행자부장관은 국회 결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임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의 해임건의권은 국회의 대정부 견제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요, 행정부가 국민의 대표기관에 책임진다는 의의를 가진 것이다. 미국에선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나 미국에서는 주요 공무원에 대한 상원의 인사청문회제도를 두고 있다.
지난번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비토된 사람도 대통령이 임명한 바 있는데, 이는 미국식 대통령제 원칙에도 위배된다. 국무위원, 국정원장의 임명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기에 국회의 의견을 무시해도 된다는 발상은 헌법관례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우리 헌법은 의원 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하여 국회가 행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무총리를 해임 결의하면 국무총리가 제청한 국무위원 전원이 총사임하도록 하는 것이 의원 내각제의 본질이다. 헌법은 총체적 책임과 개별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 해임 건의는 건의권이기 보다는 불신임권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대통령은 헌법의 정신-권력의 견제·균형의 원칙과 국민대표의 원리-을 존중하여 국회 의결을 받아들여야 한다.
해임 건의는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서열 파괴의 인사, 치안 부재, 남남갈등 야기 등 정치적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을 수 없기에 그 보좌관인 국무총리나 관계 국무위원의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정부가 국회의 건의를 무시할 경우 이번 정기국회의 순항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행 헌법의 치명적 약점은 국회와 정부가 대립할 경우 조정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프랑스에서는 국회의 의사를 우선하여 국회 다수당에 국무총리직을 맡기는 동거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국회의 극한적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회 다수당을 껴안아야 한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릴 경우, 정치개혁이나 경제회생은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후보는 장상 국무총리 서리 지명이 국회동의를 얻지 못했을 때 대통령에게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협의할 것을 요구했고,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제 1당에게 국무총리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최근엔 이 약속을 번복하려는 것인지 미국식 대통령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처음으로 탄생한 변호사 출신 대통령에게 입헌정치와 법치주의의 확립을 기대하고 있다. 법률을 모르는 대통령과 달리 '해석개헌'을 하겠다고 하고 법치가 아닌 코드정치를 하겠다고 하고 있어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해임건의안 처리가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누를 범하지 말고 상생정치의 진수를 보여주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