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이 현대로부터 받은 200억원 중 50억원은 권씨의 내년 총선 자금용으로 보관 중이라고 자금관리인 격인 김영완씨가 검찰에 진술했다.

권씨가 내년 총선에 직접 출마하려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년에도 다른 후보들에게 뒷돈을 지원하려고 했다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어느 경우라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권씨의 출마설은 그동안 끊이지 않고 흘러다닌 것이 사실이다. 출마 지역구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만약 권씨가 출마하려 했고 김씨가 보관 중인 50억원이 그 자금이라면 그 규모에 국민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벌어진 재선거 때 중량급 여당 후보가 돈을 쓰는 행태를 빗대 ‘그 동네 개들은 10만원짜리 수표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회자된 적도 있었는데, 그 말이 빈말만은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2000년 총선 법정 한도 비용은 1억여원이었다. 중량급이거나 전략지역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 중 상당수는 그 몇 배, 몇 십 배를 썼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돼 온 일이고 우리 사회 위선(僞善)의 대표적 부분이기도 하다.

이 위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정치자금도 보다 현실화돼야겠지만 그에 앞서 도대체 누가 얼마나 썼는지, 선거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숨길 수만 있다면 또 일을 저지르고 보는 것이 정치판의 어쩔 수 없는 풍토이기 때문이다. 이제 김영완씨의 진술까지 나온 마당에 여기서 다시 오리무중이 된다면 이 정권의 ‘정치 개혁’은 말장난에 머물고 말 것이다.

권씨가 다른 후보를 지원하려 했다면 무엇 때문에 칠순을 넘긴 나이에 정치적 영향력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일부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 유지를 위해 막대한 돈을 불법적으로 비축해 지탄을 받은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