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대

중국 소설가 고화(古華)가 198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부용진(芙蓉鎭)’은 제1회 모순(茅盾)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화로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소설에는 공산정권 수립 후 1960년대 중국에서 볼 수 있었던 전형적 인물 여러 명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왕추사’란 자다.

토지개혁이 있던 해 왕추사는 22살이었다. 출신 성분은 무산자 계급으로, 출세하기에는 교양이 부족했으나 말주변이 좋고 다리가 튼튼하고 머리가 잘 도는 데다 글자도 몇 자 읽을 줄 알았다. ‘토지개혁의 핵심’으로 인정받은 그는 ‘승리의 과실’로 의복과 이불, 좋은 밭과 부자의 별장으로 쓰이던 2층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심부름이나 하고 징이나 두드리는 일에 습관이 됐을 뿐, 농사와 같이 힘들고 더럽고 녹초가 되는 일은 견디지 못했다. 이태가 지나자 곡식보다 풀이 성한 토지를 야금야금 팔아 술과 국수를 사먹었다. ‘돈을 모으기란 바늘로 흙을 긁어모으는 것과 같고, 돈을 쓰기란 파도가 모래를 씻어 내리는 것과 같다’는 속담처럼 왕추사는 몇 해가 지나도록 아내도 얻지 못한 채, 많던 살림살이를 죄다 없앴다. 해방과 토지개혁 이전같이 다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새끼를 꼬아 허리에 감고 다녔다. 그는 줄곧 “인민정부는 의식(衣食)의 부모(父母)”며 “정부가 자기를 구제하지 않는 것은 새 사회의 수치”라 외고 다녔다.

‘토지개혁의 핵심’ 가운데 팔자를 고친 사람도 많았다. 이는 분명 조상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 아니라 주린 배를 움켜잡던 괴로운 과거를 성실로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왕추사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한 번 더 토지개혁이 있기를 기다렸다.

“제기랄! 내가 만약 정권을 잡았다면 해마다 한 번씩 계급성분을 가르고, 해마다 한 번씩 토지개혁을 해서, 해마다 한 번씩 몰수재산을 분배할 거야.”

그래서 그는 상급 부서에서 파견된 공작원 동지가 운동을 전개할라치면 징을 치고, 호루라기를 불고, 메가폰으로 외치고, 자료를 돌리고, 구호를 선창했다. 애초부터 정치운동이 그를 요구했고 그 역시 정치운동이 필요했다. 그런 왕추사에게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정부에서 파견된 사회주의 교양 공작반 반장인 ‘이국향’이란 여자였다. 그녀는 지속적인 운동과 계급투쟁에 힘쓰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부활하여 지주와 부르주아 계급이 정권을 잡을 것이며, 또다시 산으로 들어가 유격전을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반장님, 이번 운동은 제2의 토지개혁 같은 것입니까?”

“네, 그래요. 이번 운동은 빈농·고용농에 의지해서 뿌리를 뻗고, 지주·부농·반혁명분자·우파분자를 타도하고, 새로 생긴 부르주아 계급을 쳐부수는 운동이에요.”

왕추사는 “또다시 재산을 나눠 가지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속으로 삼키며 쾌재를 불렀다. “이것 봐라! 너희 바보들은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잘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 하지만 나는 ‘오늘의 빈농’으로 너희들을 혁명하고 너희들과 투쟁한다 이 말씀이야!”

두 사람은 2층집 입구에 ‘절대로 계급투쟁을 잊지 말라. 영원히 자본주의를 비판하자’는 빨간 대련을 붙였다. 그 다음 좌파·우파·중도파를 구별하고, 운동은 누구를 의존하고 누구와 단결하느냐, 누구를 공격하고 고립시키느냐를 확정했다. 새로이 계급대열을 조립하여 전선을 구성하고, 모든 사람의 재산을 밝혀 새로 생겨난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정치운동을 시작한다.

‘부용진’이 발표된 지 22년이 지났고, 이 소설 속의 정황도 이미 40년이 지난 역사의 일부분이 됐다. 현재 중국에 왕추사와 같은 자가 있을 리 없다. 하물며 지금 대한민국 소설가가 이러한 인물에 흥미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심상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