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청문회식 재판’이 도입된다.
대법원은 사회적 가치 판단이 요구되는 주요 사건을 선별, 소송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닌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법정으로 불러 의견을 듣고 판결에 반영하는 공개 변론 방식의 재판을 이르면 올해 중 도입할 예정이라고 27일 밝혔다. 대법원은 또 이 같은 심층 재판이 가능하기 위해선 재판 건수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 대법원에 대한 상고를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대법원 재판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현재는 대법관들이 법정이 아닌 사무실에서 서류 중심으로 재판으로 하며, 재판 내용도 개별 사건에 대한 하급심 재판의 당·부당 여부만을 가리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앞으론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주요 사건에 대해선 법정에서 재판을 열고 각계 전문가 의견을 들어 정책적 판단까지 판결에 고려하겠다는 것으로, 대법원이 ‘실무 법원’에서 ‘정책 법원’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대법관 제청파문을 통해 드러난 대법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새로운 재판 방식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국민 여론이 양분된 사건 등을 처리할 때 전문가나 사회 각계 인사를 공개 변론에 참고인으로 참석토록 해 그들의 의견을 판결에 고려하는 청문회 방식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1심 재판 중인 새만금 간척사업 소송이 대법원에서까지 진행될 경우 ‘국가·지역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 찬성론자와 ‘환경파괴 문제’를 제기하는 반대론자를 불러 공방을 펼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올해 활동 중인 한총련 11기 대의원이 기소될 경우 ‘이적성’ 문제에 대한 판단도 좌파와 우파 인사를 각각 불러 의견을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은 대학 입학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한 합헌 여부 결정을 내릴 때나, 학교 내 예배(채플) 또는 낙태의 합헌 여부 등을 따질 때 진보적 사회단체와 보수적 연구재단 등의 의견을 참작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한 사건의 정치·사회·경제적 의미까지 따져 판결을 하겠다는 취지”라며 “이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이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열된 여론을 통합하는 기능까지 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원·피고측에도 변론 기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대법원의 심도 깊은 재판을 위해 연 2만건에 달하는 상고사건을 제한하는 방안도 조만간 구성될 사법개혁추진기구를 통해 추진키로 했다. 상고를 제한하고 있는 미국 대법원은 연간 100여건, 일본 최고재판소는 500여건의 사건만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81∼90년 상고허가제 시행 당시에는 전체 상고의 20%가량만을 대법원에서 심리했었다.
그러나 상고를 제한할 경우 재판받을 기회를 박탈한다는 일부 국민과 재야 법조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대한변협 김갑배(金甲培) 법제이사는 “공개 변론은 사회의 변화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며 “그러나 상고를 제한하는 문제는 상고허가제 도입보다 하급심을 강화해 국민들의 승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