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두루 사면을 살펴보니, 서촉 지척이요 동해 창망하구나.’
보은표(‘보은포’ 즉 ‘은혜 갚는 박’의 와전) 박씨를 문 흥보제비가 발행하는 곳은 양쯔강 남쪽 후난성 동정(퉁팅)호 부근이다. 제비는 태평양 건너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 등지에서 겨울을 나는데도 상투적으로 ‘강남 제비’라 일컫는 것은 아무래도 중국 민속의 영향일 듯 싶다. 퉁팅호에서 흥보 사는 전라·경상 어름까지 직선거리로 1,500Km가 넘으니 ‘만리 조선’이 헛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제비 거동 봐라, 동정호 소상팔경 차례차례 구경하고 나서 북동쪽 봉황대(난징)에 잘 놀았으면 내처 동중국해 건너 조선땅 지리산 향할 일이지, 엉뚱하게 갈짓자로 내륙 유람에 날 가는 줄 모른다. 황학루(후베이성), 계명산(안후이성), 남병산(장쑤성)…. 화중 화북 훌쩍 뛰어 생략하고는 만리장성 넘어 갈석산(랴오닝성)까지 잘 오는가 싶더니 도로 연경(베이징)으로 내려온다. 장안(시안)과 낙양(뤄양) 사이 동관까지 내려와서는 축지법 쓰듯 훌쩍 영고탑(헤이룽장성)까지 올라갔다 그제야 압록강 건너 의주 통군정에 다다른다.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의 이 행로는 그러니까, 제비를 빙자해 당시 사람이 노닐고 싶던 중국 경승들을 주워섬긴 것이다. 오뉴월 연잎 사이 겨울새 청둥오리 한 쌍 헤엄치듯, 실제 경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이름들이라면 이렇게 죄다 주워섬기는 것이 판소리 내러티브의 특징 중 하나다.
아무튼 압록강 건넌 제비는 강동 평양 송도(개성) 임진강 지나 한양 삼각산에 다다른다. 남대문 칠패팔패(중림동) 배다리(서울역밑) 아야고개(이태원) 동작강(동작동) 남태령…. 그러 훌쩍 뛰어 운봉 함양 사이 흥보 집이다.
‘흥보가’에 ‘제비노정기’를 처음 짜넣은 이는 고종 때의 서편제 명창 김창환이다. 지금도 동·서편제 할 것 없이 이 대목만은 김창환의 버전대로 부른다.
(김세중·서울대 국악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