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시작된 북핵 6자회담은 예상대로 미국과 북한간의 공방으로 시작됐다.
미국은 북한 핵 계획의 완전한 폐기를,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등 팽팽히 맞섰다. 주최국인 중국을 제외하고 세 시간 이상 이어진 각국 수석대표 기조연설에서 양측은 두 시간 정도를 사용했으며, 특히 미·일은 어느 나라도 의식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 미국 “북핵 완전히 포기해야
첫 기조연설에 나선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북한 핵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폐기와 종식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우리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그는 작년 10월 드러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이 1994년의 핵동결 합의를 비롯해 국제규범을 명백히 위반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켈리 차관보는 특히 북한이 지난 4월 3자회담때 중유공급 재개 핵협상 가능 등의 내용을 담았던 이른바 ‘새롭고 대범한 방도’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고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들이 밝혔다.
미국의 답변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북한의 핵개발 행위는 국제규범을 위반한 것인 만큼 북한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이를 먼저 폐기해야 하며, 북핵이 해결되면 안보우려 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일종의 역제의성 포괄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켈리 차관보는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우리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러한 대북 불가침 정책을 여러 차례 아주 분명하게 천명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권, 마약제조·위조지폐 거래 등의 해결도 언급하면서 다만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은 계속하겠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북한 “미국의 적대정책 전환 선행”
북한 수석대표인 김영일 외무성 부상(副相)은 먼저 핵문제가 미국의 대북 적대(敵對)정책에서 비롯된 만큼 미국의 정책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미국의 적대정책 전환이 확인돼야만 북한의 핵 억제력 확보 프로그램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미국이 최근 서면 안전보장이나 주변국들이 함께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집단적 안전보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상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외교관계 수립과 함께 미국이 북한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협력을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만이 북한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이 끝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자신도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북핵에 대한 사찰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설명했다.
북한은 특히 이러한 쌍방의 정책 전환이 철저하게 ‘상호 동시행동’ 원칙을 통해 실현돼야 하고, 다른 나라들이 미·북 간 행동의 진행과정을 감시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 한국 “核 폐기땐 경협 확대”
이수혁(李秀赫) 외교부 차관보는 북한이 핵포기와 현상 동결 의사를 밝히면, 한국 등 관련국들이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해주고 전향적인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핵포기가 실제로 이행되면 남북 경협의 확대, 세계은행(IBRD)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 가입, 미·북 및 일·북 관계 개선을 지원할 뜻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차관보는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한반도 비핵화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라며 “검증 가능한 핵폐기를 위해 대칭적, 균형적 상호조치를 통해 이를 철저히 검증하고 포괄적인 해결을 통해 전반적 관계 회복 정상화로 나갈 수 있다”는 3단계의 접근법을 제시했다.
◆ 일본 “납치문제도 해결돼야”
야부나카 미토지( 中三十二)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북한의 핵폐기와 일본인 납치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전제 아래, 작년 12월부터 중단된 중유(重油)와 전력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단계별 대북 지원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이 납치문제 해결에 전향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대규모 인도적 식량지원과 함께 화력발전소 및 송전선 건설 등을 통한 전력지원과 본격적인 경제지원에도 나설 의향이 있음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북한의 미사일 위협 문제도 핵·납치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을 표명하면서 “북한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에 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중국 “美·北 평등한 협상을”
중국은 평등한 협상과 참여국들의 공동 인식 모색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은 “미·북 양측의 의견을 주의깊게 듣고 이 가운데 공통점을 찾아 합리적인 부분을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평등하고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와 중국은 이웃으로 한반도의 안정 유지가 중국과 동북아의 평화와 안녕에 영향을 준다”며 북핵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중국 정부는 한반도의 비핵화(非核化)를 확보하고 동시에 북한이 제시한 안보우려도 해결해야 하며 대화와 평화적인 회담을 통해서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전했다.
◆ 러시아 “당사자간 신뢰가 중요”
러시아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북핵 문제가 세계적인 비확산체제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점과 미·북 쌍방이 회담에 충실히 임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무게를 뒀다.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부 아주담당 차관은 “한반도의 분쟁 위험은 러시아의 안보에도 위협을 주는 요소”라고 전제하고 핵문제 당사자들 간에 최상의 신뢰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타협점을 찾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요구에 미국측이 반응을 보여야 하며, 북한이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으로 만족하지 못할 경우 관련국들이 추가로 이를 담보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입장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