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열리는 북핵 관련 6자회담에 대비하는 부시 행정부의 전략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대단히 미온적이다. 한국측에서 차관보급 관리를 보내 한·미·일 3국의 공동전략과 구체적 제의를 협의하려고 해도 미국측은 구체적 제의 등을 숫자화해서 제시하기보다 전체 발언에 총체적으로 담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측의 이런 소극적 또는 미온적 대응은 6자회담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어떤 결과를 도출한다기보다 미국이 북핵의 ‘위험성’을 마냥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과 비판을 피하기 위한 시간 끌기의 인상을 주고 있다. 미국이 현재 외교통로를 통해 감지한 바로는 북한의 태도가 변화했다는 기미도 없고, 또 앞으로 그럴 것을 기대할 만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 역시 ‘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회담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으로부터의 이완 때문이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한 소식통은 지금 미국이 한국 정부를 대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치지도외(置之度外)에 가깝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 정권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을 유지할 뿐 점차 거리를 두며 멀어졌다는 판단 아래 미국 역시 북핵이라는 커다란 명제에 앞서 한국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미 관계는 현재 50년 역사에서 가장 소원한 상태에 있다.
그 핵심이 주한미군의 문제다. 이제까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며 대북 화해를 요구해온 ‘햇볕파(派)’도 주한미군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전형적인 예(例)이다. 그는 심지어 북한도 미군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강조하곤 했다. 주한미군 문제가 한국 국민에게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측 판단이다.
그동안 정부차원에서 터부시(視)되었던 주한미군 문제가 한국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개리에 거론되고 있다. 미국측은 지난번 한총련의 미군 탱크 위 시위 자체는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극단주의자들의 단편적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다며 “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사건 이후 한국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인 일련의 발언과 태도”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이제 한국정부마저 미군의 주둔을 더이상 원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주한미군 문제는 더 이상 터부가 아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비교적 조심해왔던 북한 당국도 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들고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이번 6자회담에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당사자들은 보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미 기운과 주한미군 철수 데모가 일부 세력의 영역에 머물렀던 저간의 사정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북한의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한총련 시위와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 발언은 북한에 어떤 자신감을 주고 내심 미국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에 ‘나팔’을 불며 임할 처지가 아니며 명색이 ‘같은 편’이라는 한국을 무작정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래서 한국과 대북전략을 상의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소극적, 미온적인 태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베이징의 6자회담에서 북한의 공세와 중국·러시아 등의 공조로 미국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다. 거기에 한국까지 애매한 태도를 보일 경우 미국은 이제까지와 다른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상황, 미국의 대선 등 변수가 정리될 때까지 시간을 끌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 관찰이다.
(김대중·이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