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에서 택시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래플즈 병원에 들어서면, 호텔 벨보이 복장의 프런트 오피서(Front Officer)가 고객(?)을 맞는다. 지난 13일 병원 2층 헬스케어센터, 30여평의 널찍한 대기실은 20여명의 외국인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왔다는 소라바야(50)씨는 “매년 이곳에서 심장병 등 건강검진을 받고 간다”며 “올해는 가족·친지 6명이 함께 와서 진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3박4일 동안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쓴 돈은 건강검진비·호텔비 등을 합쳐 1인당 최소 2000싱가포르달러(약 140만원)이다. 병원은 외국에서 온 환자에게는 검진 결과를 이틀 만에 알려준다.
래플즈 병원은 설립된 지 2년밖에 안 된 380병상 병원. 우리나라로 치면 중소도시의 조그만 종합병원 규모지만, 올해 1분기(1~3월)에 2216만싱가포르달러(약 155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같은 기간 1000병상을 운영하는 한국 대학병원의 진료비 수입을 웃돈다.
지난해에 비해 수입이 17.3%, 수익은 12배(1172%) 증가했다. 국제 마케팅으로 진료과에 따라 외국인 환자 비율을 20~50%까지 올리고, 고난도 수술을 많이 한 덕택이다. 싱가포르 민간병원들의 진료비는 국·공립병원에 비해 20~30% 비싸다.
래플즈 병원은 싱가포르 주식시장에 상장된 350여개 회사 중 200개를 포함, 총 4300여개 회사와 소속 직원을 전담 치료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같은 행위는 한국에서는 환자 유인·알선 행위에 해당돼 불법이다.
병원 명성을 올리는 고난도 수술을 하는 의사에 대한 보상은 철저하다. 동남아시아 일대 장기이식 환자들이 찾아오는 글렌이글 병원의 외과의사는 간(肝) 이식술을 한 번 성공시킬 때마다 5만~10만싱가포르달러(약 70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한 해 100여건의 간 이식 수술을 성공시키는 세계적 대가(大家)인 한국의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의 월급이 세금 빼고 850만원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병원 운영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경쟁을 펼치지만, 의료윤리는 고도로 엄격하다. 학계 권위자 등 외부 인사로 이뤄진 감사위원회는 모든 환자의 기록을 검토하여 입원이 필요했는지 수술을 꼭 했어야 했는지 등을 체크한다.
병원장의 진료 기록도 예외가 없으며, 치아 하나 뽑은 것도 검증받는다. 감사위원회에서 부적절한 의료행위를 했다고 판정하면, 사안에 따라 해당 의사는 문책을 받거나 퇴출된다. 양칭유(Yang Ching Yu) 래플즈 병원 외과전문의는 “수술 필요성이 애매할 경우는 사전에 감사위원에게 심사를 받고 수술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진료기록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외부 병원에서 의뢰된 환자일 경우, 치료가 끝나 의뢰 병원에 다시 보낼 때는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차트 전체를 복사해서 보낸다. 최근에는 의사들이 환자 상태를 메모 형태로 적어 놓는 것도 다른 의사가 알아보기 쉽도록 표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이란 샴쌍둥이 분리수술 당시에는 별도의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인 이슬람계 국회의원에게 최종 결정을 맡겼다.
또한 병원의 진료 실적과 수입·지출 내역은 분기별로 주주들에게 세세히 공개된다. 상장회사로서의 의무다. 파크웨이 병원 그룹의 CFO(재무관리책임자) 탄카이셍씨는 “병원 회계가 투명해야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며 “투자를 받지 못하면 다른 병원과의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병원 회계 투명화를 놓고 병원과 시민단체들이 서로 맞서는 상황은 이곳에서 연출되지 않는다. 파크웨이는 씨티은행·HSBC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 병원 3개를 세웠고, 여기서 입원 치료를 받은 외국인 환자만도 한 해 1만3000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