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텍600` 의 약 알갱이수 직접 한번 세봐?

‘죠리퐁’ 한 봉지에 든 죠리퐁의 개수는? 감기약 ‘콘택 600’의 알갱이는 과연 600개인가?

불과 5년 전만 해도 ‘쓸데 없었던’ 이런 의문들이 요즘 인터넷을 달구는 ‘핫 이슈’다. 인터넷을 끼고 사는 10~20대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컴퓨터로 논다’ 희한한 사진, 포복절도할 이야기, 엉뚱한 질문들이 모니터에 뜨는 순간, 접속자들은 ‘댓글(리플·reply)’을 달려고 전력질주한다. 순식간에 수백개가 달릴 만큼 격렬하다. ‘나는 댓글 단다, 고로 존재한다’의 시대다.

‘죠리퐁’과 ‘콘택600’은 인터넷 놀이의 전형적 사례다. 어느 날 인터넷에 “죠리퐁의 평균 갯수는 1647개다”라는 글이 떴다. 이어진 댓글은 “한심한 녀석!”이 아니었다. 대신 “죠리퐁 1봉지가 370Kcal니까, 죠리퐁 한 알은 0.22465088Kcal. 성인 남성 하루 권장열량이 2400Kcal라고 할 때, 죠리퐁 1만683알을 먹어야 한다. 6봉지를 먹고 7번째 봉지에서 801개만 먹으면 된다”는 글이었다. 이어 “내가 세어보니 1860개다” “조각난 것까지 세서 그렇다”는 글이 올라오며 논란이 뜨거워졌으나 최근 평정(平定)됐다. ‘논란’을 접한 제과회사에서 홈페이지에 “한 봉지 평균 1529알”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죠리퐁 개수’가 해결되자 이번엔 ‘콘택 600’이 도마에 올랐다. “총 734개”라며 누군가 알약 분해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자, “300~400개밖에 안된다”, “600은 개수가 아니라 약효가 10시간 지속된다는 뜻”이란 댓글이 붙었다.

이것도 시들해진 요즘, 네티즌들은 “또 뭘 세어볼까” 하며 마우스를 굴리고 있다.

어떤 텍스트에 동조 내지 반박하기 위해 도입된 댓글은 이제 의사표시 용도가 아니라 달아올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1등 놀이’가 가장 흔하다. 가령 누군가 한 게시판에 시사 문제에 대한 장문의 의견을 올리면, 제일 먼저 붙는 댓글은 이 한마디다. “내가 1등이오.”

인터넷 세대는 황당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읽으며 ‘동질감’을 느낀다. 한 대학교 사물함에 붙어있는 메모지.

‘아?? 열풍’의 근거지인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를 비롯, 네티즌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의 댓글 첫머리는 대부분 “내가 1등”, “아깝다 2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대개 ‘~하오’ 같은 고어투를 쓴다.

인터넷 초기 상대방을 ‘○○님’으로 불렀던 네티즌들은 요즘 ‘낭자’, ‘본좌’ 같은 말을 쓴다. 정순기(21·한국외대 2)씨는 “인터넷에서까지 평범한 말투를 쓰기 싫어 고어체를 쓴다”면서 “일단 재미있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댓글끼리 ‘채팅’도 이뤄진다. “몇신데 아직 안자고 리플을 달고 있소?”, “지금은 새벽 3시요” 같은 글들이 본문과 상관없이 이어진다. 댓글의 재치에 따라 A+부터 F까지 ‘학점’을 매기기도 한다.

이쯤 되자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포토갤러리에 와서 리플 달며 놀아요” 하는 광고문구가 등장했고, 프리챌은 댓글이 100개에 이르면 황금굴비 아이콘을 달아준다.

네티즌들은 단지 이 아이콘을 얻기 위해 무의미한 댓글을 올려붙인다.

‘댓글 놀이’는 현실에서도 벌어진다. 연세대 도서관 게시판에 재미있는 메모가 붙자, ‘포스트잇’에 쓴 댓글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가상세계에서 부글부글 끓던 댓글은 결국 현실세계로 뛰쳐나왔다. 얼마 전 연세대 도서관 6층 게시판에는 “갈색치마 여학우를 뒤따라가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은 없어도 좋으니 여학우여, 훔쳐간 내 마음을 돌려달라”는 메모가 붙었다. 그 밑에는 “저 어제 회색치마 입었거든요”란 메모가, 이어 “앗싸, 내가 2등”, “힛겔로~힛겔로~(인터넷 ‘히트갤러리’에 띄우라는 뜻)”라는 메모지가 잇따라 붙었다. 다시 이것을 사진찍어 인터넷에 띄우고, 또 댓글이 붙는다. 현실과 가상이 상호작용하는 ‘매트릭스’가 따로 없다.

광고회사 ‘화이트’의 유승준 이사는 “인터넷의 특성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의견 교환’을 뛰어넘어 ‘놀이’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무의미한 댓글도 ‘반응(reaction)’이란 기능을 하면서 놀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는 조선일보 인턴기자 정선영(서강대 정치외교 4) 이순미(숙명여대 언론정보 4) 서유진(연세대 중국어 3)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