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경제부 차장대우 <a href=http://db.chosun.com/man/>[조선일보 인물 DB]<

세계 4위의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자동차는 기자가 일본문제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끊임없이 기자를 놀라게 해온 연구 대상이다. 일본 모델은 망했다고 일컬어지는 속에서도 철저하게 일본식 경영시스템을 고수하고, 그러면서도 천문학적 이익을 내며 강해져만 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마 독자들은 회사가 엄청난 흑자를 냈는데도 도요타 노조가 임금 인상을 포기했다는 얼마 전 뉴스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도요타를 아는 사람들에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지난 수십년 간 도요타의 노(勞)와 사(使)는 어느 쪽이 주인이랄 것도 없는 운명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쳐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지간히 단련된 기자도 최근 소식에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도요타가 일본 전체를 개조하는 ‘재활(再活) 병원’ 노릇을 하고 있다는 뉴스들이다. 이를테면 요미우리신문은 ‘공공사업의 악폐를 깨뜨린 도요타류(流)’란 제목으로 이런 기사를 실었다.

“아이치(愛知)현 앞바다에 짓는 주부(中部)국제공항 사업비가 당초 계획보다 1200억엔(약 1조2000억원), 15%나 절감될 전망이다. 도요타 사람을 사장으로 영입해 도요타식 경영을 접목시킨 결과다.”(7월 31일)

일본 우정(郵政)공사 케이스도 있다. 지난 4월 출범한 우정공사가 도요타와 1년 계약을 하고 도요타 직원 7명을 파견받아 ‘도요타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도요타팀은 우체국에 상주하면서 우편물 처리 프로세스를 원점부터 점검해 수백 곳의 낭비요인을 찾아냈다.

모든 직원의 모든 동작을 0.1초 단위로 측정한 뒤 동선(動線)이 최소화되도록 작업라인을 재배치하는 식이다. 도요타팀은 이런 방법으로 370여개의 개선점을 찾아내 고쳐주었다. 민간 기업이 관(官)을 ‘지도’해준 셈이다.

은행이며 병원에서 관청까지 ‘도요타 웨이(도요타 방식)’의 세례를 받은 사례는 셀 수도 없다. 방위청은 도요타 직원 20명을 파견받아 코스트 삭감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가가미가하라(各務原)시청이 도요타 방식을 시정(市政)에 도입했고, 관청 중의 관청이라는 재무성 주계국(主計局·한국의 예산처)도 예산 절감에 도요타 모델을 응용하고 있다.

도요타는 ‘가이젠(改善·개선)’ 같은 경영 용어를 일본어 발음 그대로 세계에 통용시킨 일본형 모델의 상징이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도요타의 철저한 합리주의 철학을 전수받으려 일본의 각 부문이 손 벌리고 찾아오는 양상이다.

도요타 자신도 ‘일본 개조 병원’ 역할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도요타가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쿠다 회장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해 1조5000억엔(약 15조원)의 이익을 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젠 도요타가) 국가를 위해 보은(報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닛케이비즈니스 3월 3일)

도요타는 강하다. 그토록 강하기 때문에 노도, 사도 국가 전체를 고려하는 여유를 지녔는지 모른다. 나라가 나아갈 개혁 모델을 제시하며 앞장서서 이끄는 도요타 같은 기업들이 있기에 일본은 희망이 있다.

세계 7위 자동차 메이커 현대자동차. 흔히 도요타와 비교되는 한국의 최강급 회사다. 하지만 국가 경제와 한국형 모델을 생각하는 광역적 관점이 현대차 노사엔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올 노사 협약에서 나쁜 선례를 만들어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8년 전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의 ‘베이징 발언’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한국)기업은 2류, 행정은 3류”라는 당시 발언에는 기업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분식회계(SK글로벌)며 정경유착(현대그룹)이 여전한 지금도 한국 기업의 그런 자부심은 유효한가.

(박정훈·경제부 차장대우 jh-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