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일어선 은행원 김인구(사진 왼쪽부터)·양종호·김범서씨가 서울 명동 은행회관 앞에 모여 다시 한번 비상을 다짐하고 있다. <a href=mailto:wjjoo@chosun.com>/주완중기자<

신한은행 양종호(51) 지점장에게 2000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경남 창원지점장으로 일하던 그는 그해 연말을 며칠 앞두고 업무추진역 발령을 받았다. 업무추진역이란 실적이 꼴찌에서 5% 정도까지인 지점장의 직위를 해제하고 재교육을 시키거나, 보직 없이 영업을 맡기는 제도다. 그후 1년간 양씨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으며 좌절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업무추진역이 인생 종착역이 될 수는 없었다. ‘지옥 문턱’까지 갔다 작년 1월 지점장으로 컴백한 그는 이를 악물고 뛰었고, 신한은행 올 상반기 실적 평가에서 353개 지점 중 1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부상으로 부부동반 유럽여행권까지 받았다.

퇴출(退出) 위기를 딛고 ‘패자부활전’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40~50대 성공담이 은행마다 속속 나오고 있다. 신한은행의 올 상반기 실적 평가에서는 80명 수상자 중 업무추진역 출신이 9명에 달했다. 외환은행도 업무추진역 출신 지점장 4명이 상반기 실적평가 대회에서 부문별 3위 이내에 올랐다.

외환은행 배대열(裵大烈·49) 부산 두실역 지점장은 2001년1월 업무추진역으로 발령나자마자 회사로부터 특명을 받았다. 경매를 거치고도 회수하지 못한 악성 부실채권(특수채권)을 1년간 4억원 회수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8억원을 회수해 목표를 200% 달성함으로써 ‘서바이벌게임’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이어 그는 ‘1년간 은행 순이익에 1억원을 기여하라’는 2차 관문도 통과했다. 발이 부르트게 쫓아다녀 신규 고객 800명을 개척한 덕이었다.

3차 관문은 수원 지역 영업 개척이었다. 그는 수원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들을 5~6회씩 쫓아다니며 부동산 매매 계약을 하는 고객들의 담보 대출을 소개해 달라고 졸라 부동산 중개업소 중 110여개와 거래를 텄다.

배 지점장은 무려 세 차례나 실력을 입증한 끝에 지난 2월 비로소 지점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배씨는 그 뒤 영업 환경이 비슷한 11개 지점 중 꼴찌이던 지점을 몇달 만에 3위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배 지점장은 “마이너리그로 갔던 야구 선수도 잘하면 메이저리그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김인구(金仁球·47) 잠실시영아파트 지점장은 어느 날 딸에게 ‘아빠, 힘들지만 힘내세요’라는 편지를 받고 용기를 얻어 1년 만에 지점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상반기 실적 평가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외환은행 김범서(金範瑞·50) 지점장은 암송할 정도로 불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지난 3월 복귀한 뒤 상반기 실적 2위를 차지했다.

외환은행 김영우(金榮雨) 부행장(인사담당)은 “흔히 은행원을 편한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은행 영업 일선은 그렇지 않다”면서 “업무추진역 제도는 사람의 성격을 바꿀 정도로 가혹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IMF 사태 이후 옷을 벗은 은행원은 4만7314여명. 이 중 적지 않은 숫자가 40~50대다. 은행가의 명예퇴직 바람은 지금도 여전하나, 삭풍을 이겨낸 성공스토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