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밀림 이야기’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정면에서 턱 밑 털이 날리는 장면까지 근접촬영했다.

서걱서걱 흰 눈을 밟고 시베리아 호랑이가 다가온다.
이곳은 러시아 연해주, 빽빽한 침엽수림이 몇 백 리에 걸쳐 계속되는 땅, '밀림(密林)'이다.

숲은 적막하다. 사방 백 리 안에 사람의 기척은 나이 마흔을 눈앞에 둔 깡마른 사내, 자연 다큐 전문 EBS 박수용(39) PD뿐이다. 그는 얼어붙은 땅에 지하 1.5m 깊이의 토굴을 파고, 언 주먹밥을 녹여 먹으며 석 달째 호랑이를 기다렸다. 반경 100㎞ 안에 동료 3명이 그와 같은 자세로 잠복 중이다.

호랑이가 다가온다. 성년이 거의 다 된 새끼 3마리를 등 뒤에 거느린, 늠름한 암컷이다. 땅 밑에 웅크린 박 PD의 몸에서 지상의 찬 공기와 맞닿은 곳은 카메라 렌즈를 조작하는 손뿐이다. 호랑이가 렌즈에 코 끝을 대자, 박 PD의 손등에 호랑이의 찬 털이 스르르 스쳤다.

호랑이는 돌연 앞발을 들어 카메라 렌즈를 부숴버린 뒤, 나흘 동안 새끼 3마리와 함께 박 PD가 잠복한 토굴을 맴돌며 토굴을 덮은 위장물과 덮개판자를 거의 박살냈다. 박 PD는 호랑이가 토굴을 막은 덮개를 완전히 부수고 뛰어들 때, 과연 공포탄이 들어있는 총을 제때 쥘 수 있을지, 총 한 방으로 네 마리를 다 쫓을 수 있을지 계산하며 숨이 막히는 나흘을 보냈다.
그가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하고 침이 마를 무렵, 호랑이는 비로소 떠났다.

14일과 15일 이틀간 EBS TV가 시베리아 호랑이 삼대(三代)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자연 다큐멘터리 ‘밀림 이야기’를 방영한다. 방영 시각은 밤 10시. 박 PD를 포함한 EBS 자연 다큐 PD 4명이 2001년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만 2년4개월간 연해주 밀림 일대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시베리아 호랑이를 취재해 만든 작품이다.

다큐 시사회장에서 만난 박 PD는 “호랑이가 서벅서벅 눈 밟고 다가오는 소리, 나흘간 여러 번 반복해서 공격할 때마다 다시 들어야 하는 그 소리가 끔찍하고 끔찍했다”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턱 밑 털 날리는 장면 나온 거 봤지요? 봤지요?”하고 좋아했다. 박 PD팀이 촬영한 테이프는 1400여개. 턱 밑 털이 날리는 문제의 장면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호랑이 삼대의 생사(生死)가 고스란히 찍혀있다. 여간해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2시간 분량의 다큐 전편에 걸쳐 끊임없이 출몰할 뿐 아니라, 호랑이가 카메라 렌즈를 비빌 때 그 턱 밑 털이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는 장면까지 나오는 근접 촬영이다. 여진족의 일파인 ‘우데게’족 삶의 풍경도 드라마보다 감동적으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