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법무장관이 엊그제 열린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에서 중도 퇴장하고 위원직 사퇴의 뜻을 밝혔다. 박재승 대한변협 회장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만일 강 장관의 행동이 집권측 내부의 공감대에서 출발했고 변협회장 역시 같은 생각에서 행동한 것이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와 변협이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려는 공동전선을 편 셈이다. 배경이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대법관 제청을 거부하는 사태까지도 내다볼 수 있다.

사퇴 파동은 변협과 시민단체의 대법관 추천명단에 포함돼 있던 중견 부장판사가 사표를 던져버리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일부 소장판사들은 연판장까지 돌렸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대한변협은 신임 대법관에 진보 성향의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대법원에 이념의 교두보를 만들고 나아가 대법원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진보 세력의 의도까지 엿보이는 이번 사태의 결말을 그래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법관은 이번에 임명되는 1명을 시작으로, 2004년에 1명, 2005년에 6명, 2006년에 5명 등 전체 14명 중 13명이 이 정권 임기 중에 교체되게 된다. 이번에 진보세력의 뜻이 관철된다면 향후 대법원은 완전히 진보 진영의 진지화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이념과 사상을 따져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영미법 체계에서 있는 일이지 우리 식의 대륙법 체계에는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대법원이 사시 10~11회의 법원장 3명을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 후보로 추천한 것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법원 안팎에 이는 변화의 흐름을 보다 능동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재조(在曹) 시절 탁월한 재판 능력으로 인정받았던 재야법조 인사를 후보자 속에 포함시켰더라면 상황이 달리 전개될 여지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보 색깔의 정권하에서 대법원마저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메워진다면 3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은 허물어지게 된다. 또한 판사들은 자신들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권과 시민단체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