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기업현장에서 또는 가정에서 불황과 악전고투하는 당신은 부쩍 잦아진 정부 당국자들의 '경기회복' 발언에 반색할지 모르겠다. 경제 정책 운영을 책임진 김진표 부총리며, 박승 한국은행 총재 등이 "올 하반기 중 회복세로 반전해 내년엔 5%대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을 경청은 하되 너무 깊게 믿지 않는 편이 좋다. 관리들 낙관론을 믿고 크게 투자하거나 사업을 왕창 벌였다간 자칫 낭패볼 수 있다. 정부 말대로 머지않아 경기 하강세에 바닥이 찍힐 가능성은 있으나,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며 생산성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한국경제 감상법의 포인트는 ‘경기(景氣)’와 ‘경제’를 구분하는 것이다. ‘경기’는 단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순환적 흐름이고, ‘경제’란 10년, 20년 지속가능한 잠재 성장능력을 뜻한다. ‘경기’에 현혹돼 ‘경제’를 읽지 못한다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격이다.
확실히 경기는 점차 바닥에 다가서는 느낌을 준다. 재정 투입이다, 금리 인하다 하면서 불을 땠던 경기부양의 약발도 나타날 것이고, 운 좋으면 미국발(發) 훈풍도 불어올 조짐이다. 얼마 있으면 정부 당국자들이 개선된 지표들을 흔들며 정부 잘한 덕에 경제가 살아난 듯 떠들어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경기회복과, 한국경제의 위기 탈출은 별개 문제다. 설사 소비가 좀 살아나고 투자며 수출이 일시 풀린다고 해서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중병에 걸린 환자도 가끔씩 기력 좋은 날이 반짝 있는 법이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가. 기업의 해외탈출 러시에서 보듯, 노·사 등의 낡은 시스템과 고비용·저효율 구조 때문에 역동적인 성장 동력(動力)을 상실한 것이다. 지난 몇 개월간 이런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과연 조금이라도 개선됐는가. 새 정부가 '경기대책' 아닌 '경제처방'을 무엇하나 변변히 실행한 게 있느냐 말이다.
'경기'와 '경제'를 혼동해 낭패본 케이스가 일본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일본 경제가 10여년간 내내 ‘제로(0) 성장’을 겪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96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3.5%이었고, 2000년엔 2.8%에 달했다.
일본의 실패는 이런 일시적 ‘경기’ 반등을 ‘경제’ 회생으로 착각한 점이다. 돈(재정자금)을 쏟아붓고, 금리를 낮춰 일시 성장률이 올라가자 그것으로 위기에서 탈출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 결과 개혁을 소홀히 하고, 그것이 누적돼 초장기 침체를 자초했던 것이다.
어느 나라건 정부 당국자란 좋은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습성이 있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경제위기론이 무성했던 지난 4~5월까지 청와대며 재경부 사람들은 “올해 5% 성장이 가능하다”고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전 “어두운 보도가 경제에 악영향 준다”고 언론 탓을 한 일도 있다.
DJ정부도 그랬다. 지난해 6%대의 고성장을 경제 실적으로 내세웠으나 실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경제 처방’ 대신 카드빚과 부동산 거품을 마구 늘려 달성한 ‘경기 불때기’였을 뿐이다.
그 당시 주역들이 지금도 주요 정책라인에 포진해있다. 거품경제를 만든 DJ정부 말기의 재경부 차관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었고, 그 직전은 김진표 현 부총리였다. 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 역시 당시 재경부 차관보로 카드빚과 거품 만들기에 관여한 주역이다.
경기가 좀 살아나면 이들은 또다시 낙관론을 쏟아내며 실적을 홍보하겠지만 넘어가선 안 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경기’로 ‘경제’를 위장하려는 버릇이 있고, 나중에 결코 책임지는 법이 없다. 한국경제가 중병에 걸린 지금은 ‘경기’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경제’를 지긋이 지켜볼 때다.
(박정훈·경제부 차장대우 jh-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