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일본에서는 ‘보통국가화론’ ‘정상국가화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일본이 ‘비정상 국가’였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얘기다. 비정상 국가란 다른 보통 국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일본은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력(戰力)의 보유, 교전권의 포기 및 해외파병의 금지 등 정치·군사적인 역할의 포기 내지 약화시켜왔던 것이 ‘비정상’이었다는 말이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지식인들은 비정상적 국가 운영을 당연하게 여겨왔고, 70년대까지는 평화국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해왔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이제 와서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기 불황기간이던 90년대 10년간 일본은 자기 정체성의 회복 및 재정립을 위해 분주히 뛰었다. 결국 기타오카 신이치 도쿄대 교수의 책 제목이 보여주듯 ‘보통 국가를 향하여’가 지식인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상국가화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기는가. 일본 지도층 사이에서 보통국가, 정상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총괄적인 합의는 없다. 다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평화헌법’의 개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이 보통국가·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가시화되고 있는 조치는 먼저 일본 독자방위 능력 증대를 위해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며, 미·일동맹을 명실상부한 지역동맹으로 위치시켜 일본 주변지역에서 유사시 일본의 개입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국제평화의 유지를 위한 일본 자위대의 파병을 상시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다음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대일(對日)정책의 변화다.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던 냉전형 억제정책으로부터 지역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동맹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보루로 인정했다.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에는 미·영동맹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미·일동맹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일본은 미국의 반테러 전선의 동반자로 자처하고 나선 상태다. 일본은 미국의 정책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철저하게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노선에 협력자로 나선 셈이다.

둘째, 북한의 가시적 위협 증대 등 지역적 안보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은 일본에 자위력 증대의 최대 빌미를 제공했으며, 현재의 북핵사태도 이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제반 조치들은 일본 국내 정국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90년대 들어 보수 자민당과 혁신 사회당의 대결로 점철된 소위 ‘55년 체제’가 깨진 이후 정계 내 보수세력의 입지가 강화되고 사회당 등 진보세력의 정치적 목소리가 약화되면서 ‘보통국가’를 향한 움직임은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갔다.

이 같은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바라보는 한국의 심경은 복잡하다. 북한이라는 실제적 위협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다. 또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관과 체제를 공유한 나라다. 하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연상시키는 일본의 과거사를 생각하면 정치·군사적 역할의 증대가 위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일본을 볼 때 늘 2차 대전 전의 일본을 떠올리며 군국주의와 침략적 근성을 내세우고, 일본이 전후 민주화된 국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또한 사회당 등 진보세력이 힘을 쓰던 ‘55년 체제’를 회상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은 일본 내 보수세력의 성장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들과의 협력과 비판적 견제를 동시 추구하면서, 과격한 우익세력을 고립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일본에는 지나치게 급속하게 군사력을 증대시키기보다 주변국가들과 신뢰구축 및 다자안보에도 힘쓰는 동시에, 미국 일변도 정책보다는 아시아에서 일본 고유의 순기능적 역할을 모색하라고 주문하는 쪽이 더 현명할 것이다.

(박철희·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