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은 제2의 고향"

국도 1호선을 따라 광주에서 목포 방향으로 달리다 일로읍 방향으로 난 815번 지방도를 타고 찾아간 전남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月仙里). 사방이 낮은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이곳은 예로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마을이다.

겉보기엔 여느 농촌과 다름없는 이 마을에는 도시생활을 마다하고 스스로 ‘월선리 사람’이 된 미술인 9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13년 전 목포가 고향인 도예가 김문호(46)씨가 ‘흙이 좋고, 옛 가마터가 가까운’ 이 마을에 처음 자리를 잡았고, 1년 뒤 이 곳을 드나들던 후배 김석전(42·서양화)·박갑영(37·한국화)씨 부부가 들어왔다. 다시 2년 쯤 뒤 윤숙정(여·47·도예)씨와 이 마을이 고향인 김순상(74·서예)씨, 박인수(56·한국화)씨 등이 차례로 합류했고, 얼마 뒤 양공육(43·조각)씨도 이곳에 터를 잡았다. 4년 전에는 정구을(67·한국화)·민경(53·수직공예)씨 부부가 마지막으로 이 마을 주민이 됐다.

이들은 대부분 고향이 다른 곳이지만, 이제는 어엿한 ‘무안 사람’이자 ‘지역사회 지킴이’로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마을과 주민들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제2의 고향이지요. 밤하늘의 별, 깨끗한 공기와 물, 개구리소리, 이름 모를 꽃들….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김문호씨)

“아이들 교육문제 등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풍족한 작업 여건이나 순박한 이웃, 후한 인심 등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아요.”(양공육씨)

“이제는 다시 도시에서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아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을 맞이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수시로 채소를 따다 문 앞에 놓고 갈 정도로 정이 넘쳐요.”(민경씨)

이들은 이 마을에 광역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려던 것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막아내는 등 점차 마을 사람들과 한덩어리로 어우러지고 있다. 상투를 틀고 늘 한복을 입고 다니는 박인수씨는 이제 집집마다 제삿날이 언제인지 꿰고 있을 정도로 주민들과 허물없이 지낸다.

이들 새로운 ‘월선리 사람들’ 덕분에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급격한 노령화로 쇠퇴일로를 걷던 이 마을은 요즘 끊겼던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되살아나는 등 생기를 되찾고 있다.

주민 김성태(66)씨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동고동락하니 마을에 활기가 넘치고 배우는 것도 많아 더없이 좋다”며 “정부가 농촌에 들어와 자녀를 낳고 사는 젊은층에 교육·의료비 등 지원을 해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은 이들 예술인 가족이 들어와 살면서 자연스레 ‘예술촌’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지난 5~6월에는 이 마을 미술인들이 공동으로 ‘월선리사람들 작품전’이라는 이름으로 목포문화예술회관과 무안군 청계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잇달아 전시회를 열어 주변 마을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우리가 평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고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촌장 정구을씨는 “회원들이 푼푼이 모은 기금으로 흑백 팸플릿을 만들어 조촐한 첫 전시회를 열었는데 주민들이 예상보다 훨씬 큰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셨다”며 “내년부터는 주민들 가운데 짚 공예나 수예, 연만들기 등 손재주가 뛰어난 분들과 함께 ‘마을축제’ 같은 전시회로 꾸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마을 한 쪽에 아담한 마을회관 겸 전시관을 지어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학생들을 위한 미술체험학습장을 운영하는 ‘꿈’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