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에서 첨단텐트극장을 짓고 공연 중인 뮤지컬 ‘둘리’(김수정 원작, 윤호진 연출)에는 진짜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예닐곱 어린애만큼 작고 귀여운 아기공룡 둘리가 무대를 누빈다. 키 큰 다른 공룡들 사이에서 뒤뚱뒤뚱 춤을 추고, 길동이 아저씨가 구박하면 종종걸음으로 도망다니는 모습에 어린이 관객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도대체 이 자그마한 아기 공룡은 누가 연기하는 것일까? 둘리의 두꺼운 의상을 뒤집어 쓰고 무대에 오르는 연기자는 모두 세 사람. 이 중 황세영(40)씨와 황정동(30)씨는 키가 112㎝와 120㎝로 선천적으로 왜소한 ‘작은 키’의 형제다.
“‘한국 작은 키 모임’(www.lpk.co.kr)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어느 날 ‘둘리’ 주인공을 모집한다는 안내문이 뜨더라고요. 동생하고 저는 10년 동안 환갑잔치 같은 데 다니면서 무언극쇼를 했거든요. 이번엔 일반 배우들과 같은 무대에 서보자, 한번 해보자, 하고 덤빈 게 둘리와 인연을 맺게된 거죠.” 형 세영씨의 설명이다
대구에 사는 두 형제는 곧바로 서울에 올라와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다. 이 형제는 키 작은 배우 정동진씨와 함께 번갈아가며 출연하고 있다. 공연장이 이동식 텐트라 10일까지 분당에서 공연을 한 뒤엔 서울과 일산으로 옮겨서 또 공연을 한다.
“ ‘호이!’ 하면서 마술 부리는 거, 그거 보기엔 쉬워 보여도 진짜 어려웠어요. 오디션에 붙은 뒤 바로 서울시내에 방을 하나 잡고, ‘둘리’ 만화 비디오를 구해서 봤습니다. 방에서 비디오 틀어놓고 온종일 앞뒤로 돌려 보면서 둘리 동작을 따라했어요. 허리랑 다리랑 막 후들거렸지만 신이 났어요.”(동생 정동씨)
아버지가 왜소했기 때문에 이들 둘을 포함해 4형제가 모두 왜소하다. 하지만 형 세영씨는 “난 아버지께 참 감사드린다”고 했다.
“보통, 왜소증 자식이 있으면 부모가 밖으로 내보내길 꺼리잖아요.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꿋꿋하게 바깥에 나가서 설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9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 형제들은 각기 제 몫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들 형제는 처음엔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이 체격으로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짓겠습니까? 기껏해야 1년에 콩 몇 가마니가 고작이었지요. 그래서 자개공장, 금세공 공장에 취직해 일했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일해도 월급을 더 적게 받는 게 싫었어요.”
형은 20대 중반,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다. 나이트클럽에서 호객도 해보고, 밤무대에도 서 봤다. 그러다 30대 초반에 동생을 설득해 함께 ‘무언극 공연단’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전국의 잔칫집에 다니며 갖가지 공연을 해서 벌이를 했다.
“그동안에도 죽 공연을 해온 것이지만, 이번 ‘둘리’는 아주 다릅니다. 일반 배우·스태프 40여명이랑 같이 일을 하고 어린이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까,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이 분장실로 들이닥쳐서 나랑 손 한번 잡아보려고 해요. 며칠 전엔 극장 앞에서 사인회도 했는데, 사람들이 제 앞에 줄을 섰어요. 너무 행복합니다.”(동생 정동씨)
형 세영씨는 97년에 결혼해 여섯 살배기 딸도 두었다. “마누라는 키가 큰데, 딸은 나를 닮아서 왜소해요. 가슴이 아프지만, 다행히도 우리 딸은 성격이 아주 밝아요. 집에 안 있으려고 하고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하니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저 역시 딸애한테 꿋꿋하게 바깥 세상에서 설 수 있도록 가르칠 겁니다.”
이들은 다른 배우들보다 늘 두 시간씩 먼저 와서 미리 연습을 한다. 남들보다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꿈이 커서다.
“우리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힘으로 대박 터뜨리게 만들 거예요. ‘둘리’ 극단 대표가 우리한테 감사할 정도로 말이에요.”(동생 정동씨)
“힘쓰는 일은 일반인처럼 못하지만, 배우로서는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어요. ‘둘리’가 끝난 다음엔 다른 뮤지컬에도 도전할 겁니다. 그리고 영화도 하고 싶고, 드라마도 해보고 싶고…. 꼭 성공할 겁니다.”(형 세영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