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장에 신문선(辛文善) 해설위원이 있다면, 케이블 TV 게임 대회 중계석에는 전용준(全鏞埈·33) 게임 캐스터가 있다. 스타크래프트 등 인기 컴퓨터 게임의 절정 고수들이 총 출동하는 게임 대회마다 출동해 화려한 수사(修辭)와 재담으로 중계 방송해 경기장을 후끈 달구는 것이 그의 일이다.

별명은 ‘오버맨’. 박진감 넘치는 현장 해설에 프로 게이머의 전적(戰績)과 승부 패턴까지 양념으로 버무려 내는 말솜씨 덕분이다. 케이블 게임 전문 채널 ‘온게임넷’의 애청자들 사이에서 그는 신문선 위원 못지 않은 인기 스타다. “게임을 직접 하지, 누가 남이 하는 게임을 TV로 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큰 오산. 이 채널은 지난달 13~25세 남성들 사이에서 케이블 채널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전 캐스터는 “2시간30분 넘게 계속되는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중계하다가 눈앞에 별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게이머들이 서로의 기지를 무차별 파괴하며 각축을 벌이자, 흥분한 나머지 30초 넘게 한 번도 숨을 안 쉬고 말을 쏟아낸 탓이다.

그는 원래 게임과는 아무 상관없는 인생을 살았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ITV 아나운서로 근무하던 지난 99년 한 상사가 그에게 느닷없이 “게임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중계 한번 맡아 보지” 했다. 꼭 한 달 동안 매일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서울 대학로의 한 PC방에서 프로 게이머에게 스타크래프트 개인 지도를 받은 뒤 중계석에 앉았다. 그는 “대낮에 사무실에서 눈이 벌겋게 되도록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상사들에게 ‘일을 열심히 한다’고 칭찬받은 적도 있다”며 웃었다.

“생소한 분야라 과연 될까 싶었는데 반응이 대단하더라고요. 신참이 클 수 있는 분야구나, 아직 대가(大家)가 없는 분야에 도전해보자, 이런 생각으로 사표를 내고 게임 중계 전문 프리랜서가 됐어요.”

그는 지난해 1억원을 벌었다. 프로 게이머들이 1초에 수십 번씩 마우스를 클릭하는 신기(神技)를 펼쳐보이며 억대 연봉을 올리는 동안, 그도 스타가 된 것이다. 전 캐스터는 “게임은 이미 컴퓨터로 하는 스포츠, 즉 ‘e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관전자와 시청자가 직접 게임을 하는 것처럼 실감나게 즐길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캐스터의 능력이죠. 앞으로 스타크래프트 등 외국 게임뿐 아니라, 좋은 국산 게임을 재미나게 중계해서 국내 게임 산업의 팬을 늘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