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계속 관찰해온 미국 인사들이 요즘 들어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내년 한국 총선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만일 노무현 정부가 참패하면 어떻게 되느냐.』 8개월 넘게 남은 한국의 총선거가 미국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를 물어보면 이들의 대답은 대체로 한국의 정치안정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북한도 한두 차례 다녀온 한 인사는 『나는 한국 국민이 새 정부를 선택했을 때 그 의외성과 실험정신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따라서 그 결과를 보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우리는 한국의 국내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도 하락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주의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과 좀더 대화를 나눠 보면, 한국의 정치지도력 혼선, 국정(國政) 불안, 극단적인 좌우대립 양상들이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에 대한 어떤 정책적 진로 결정을 유예하도록 하고 있으며 다음 총선의 결과가 나와야 미국의 대한(對韓), 대북(對北) 정책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총선 6개월 뒤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가 재선될 전망이 더해지면 미국이 한반도 문제, 더 나아가 동북아 문제에 본격적으로 손을 댈 시기는 아마도 2005년 초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그때까지의 공백(미국적 관점에서 보면)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북한이 더욱 날카로운 관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 미국도 미국 대선 때까지는 북한에 대해 별다른 모험(?)이 없을 것으로 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최대한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은 한국과 미국이 국내문제에 얽혀 있을 앞으로 1년 남짓이 될 것이며,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국정 불안정과 지도력 혼선을 북한이 어떻게 보고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가 우리의 관심이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노 정권의 지도력 상실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노 대통령의 주장대로 언론에 있건, 또는 반대세력에 있건, 지금 한국의 안보를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그저 한국 내의 치열한 정치투쟁과 극단적 대립, 그리고 그 와중에 놓인 대통령의 권위상실과 국정혼선, 밝지 않은 경제 전망만 크게 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북핵 해결의 구도에서 한국의 위치와 비중을 높이 두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새 대통령을 뽑아 새 정부를 구성했지만, 실수와 망발과 식언의 연속으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한 한국의 정치상황을 ‘실험’으로 보며 그 추이를 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을 부분적이나마도 한국 손에 맡기지 않으려 하고 있다.
한 관리는 베이징에서 열릴 6자회담이 3대3으로 구성됐다는 일반적 인식에 대해『글쎄, 한국이 과연 이쪽 편이기는 한가?』라고 웃으며 되물었다. 또 다른 관리는 대화중에 거침없이 「한국의 탈레반 정부」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 관리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그들은 북핵 문제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더불어 4강구도로 서서히 압력을 조여가는 「포위작전」으로 풀 생각이며, 거기에 「한국」이라는 존재는 별로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오늘도 노 정권은 누구와 싸우느라고 허송세월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는 언론이 「맛 좀 볼래」 한다고 했지만, 그 역시 이를 옹시리 물고 「덤빌 테면 덤벼」 하는 위치로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든, 누가 이기고 지든, 이 나라를 움직일 조타수는 대통령이다. 그는 책임의 변, 마지막에 서 있으며 더 이상 책임을 돌릴 곳이 없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은 「지금 열심히 내부 투쟁중」이라는 팻말을 내건 채 문을 닫고 있는 점포처럼 보인다. 그래서 안을 들여다보며 기껏 묻는다는 것이 「내년 총선 끝나면 문 열 것이냐」는 것이다.
(김대중 이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