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남성들이 투항한 동료를 보며 혀를 찼을 것이다. 더 많은 여성들은 아마 여전히 불평등한 현실을 한탄하며 성정을 곧추 세웠을 것이다.

반쪽이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는 최정현의 육아 시리즈는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평등의 개념이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의 사고가 우리 존재에 얼마나 구속되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평등부부상을 받은 부부라고 마냥 행복한 삶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평등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존재하는 불안정한 균형이며, 나의 평등과 너의 평등 사이에 궁극적인 접점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지못해 작은 것 하나 떼어 주고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준 듯 엄살부리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반쪽이는 이 갈등이 극단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강자가 먼저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육아 시리즈는 바로 그 성찰의 일기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우리가 그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이름인 반쪽이가 부부관계에서 정확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한다. 그래서 최정현은 반쪽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전면에 내놓는다. 만화를 보며 최정현의 기막힌 손재주에 감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아이의 성장과정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보며 무릎을 치는 것도 훌륭한 독서의 방법이다. 그러나 정말 반쪽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힘든 길을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유쾌하고 행복한 만화를 본 후 짐작컨대 많은 부부들 사이에서 부부싸움의 횟수가 다소 잦아졌을 것이다. 반쪽이 이후 우리 사회의 부부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쉽게 얘기하기 어렵지만 글쎄 어쨌든 만화도 그 정도의 힘은 가질만 한 때가 되지 않았는가?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