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명예를 환자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헝가리 태생 의사 제멜바이스는 그런 사고방식에 희생된 대표적 사례다. 19세기중엽 임산부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이 시체를 해부하다 손도 씻지 않고 분만실로 달려온 의사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가 파멸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의학계의 비난에 시달리던 그는 직업마저 잃고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는다. 그의 양심선언이 빛을 본 것은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난 뒤였다.

저자는 제멜바이스의 예에서 보듯 근대 의학사는 ‘의료 권력 투쟁사’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정신분석문제를 놓고 벌인 프로이트와 융의 사제간 대결, 박테리아의 정체에 대한 파스퇴르와 코흐의 논쟁….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나왔을 때 과학적이기보다 종교적·민족적 이유로 혹은 자존심 문제로 논쟁을 벌이느라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때로 이런 논쟁이 의학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 이론에 맞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만 없었다면 그만큼 논쟁으로 인한 시간낭비나 희생자는 줄어 들었을 것이다. 의사라고 모두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바다출판사·1만2800원

(최원석 논설위원 yuwhan2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