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목

국제화와 글로벌 시대를 외치는 21세기 시대. 유행보다는 개성이 존중되고 남성이 여성으로 호적 전환도 가능한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출생의 다양성, 즉 혼혈인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병적인 폐쇄성을 보이고 있다.

어머니가 ‘양공주’라고 놀림을 당하자 순간적인 울분을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안모씨, 집단 따돌림에 실직당하고 대로변 육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권모군, 자신같은 혼혈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혼 전부터 불임수술을 해버린 배모씨, 집단 따돌림으로 중학교 1학년도 다니지 못한 박모양…. 불행히도 이것이 바로 한국 혼혈인의 현주소이며, 한국의 혈연의식이 추구하는 배타적 순수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일면이다.

한국의 단일민족 의식은 국민적 융합을 꾀하기 위한 정서적 동질성이 인종차별이나 외국인을 혐오하는 강한 배타성으로 잘못 확대되어 혼혈인들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또 외국인 노동자들을 거의 내부 식민(植民)쯤으로 차별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1945년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면서부터 시작된 혼혈인 출생의 역사는 한·미 양국의 기지촌 양산과 그 궤를 함께 해왔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민은 이들을 보듬어 안기는커녕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출생쯤으로 여기고 해외입양이나 이민 등으로 해결책을 삼아왔다.

또 최근 3D 업종 기피현상으로 동남아시아 근로자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이들과 한국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KOREAN+ASIAN) 또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비현실적인 임금, 편견과 멸시 등으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미국계 혼혈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중반, 당시 미 레이건 정부의 ‘혼혈인 특별 이민법’이 통과되자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던 3000여명의 혼혈인들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으리라 몸서리치며 미국으로 떠났고, 태어나는 혼혈아기들은 해외 입양되기에 바빴다. 영어를 모르고 김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친어머니를 남겨 둔 채 낯선 땅으로 내몰린 것이다. 또 이 땅에 남아있는 혼혈인 대부분도 미국 이민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들은 왜 이토록 한국 땅을 떠나고 싶어할까. 15년간 이민을 준비해 온 한 40대의 혼혈인은 한국을 ‘애증의 조국’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자신이 태어난 나라, 40년을 넘게 살았던 나라, ‘말’이 통하는 나라….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이들까지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편견과 차별이 심한 이 땅을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우리는 혼혈인의 미국이민이 시작된 지난 20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언어와 타 문화 적응에 대한 어려움으로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다, 교포사회마저 ‘순수혈통’을 지향하는 탓에 또 다른 이방인으로 방황하는 비극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이들에게, 또 이 땅에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많은 혼혈 학생들이 따돌림 등으로 학교를 떠나고 있으며, 혼혈 성인들은 실직 등으로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혼혈인을 지원하는 펄벅재단마저도 정부 지원이 완전히 끊긴 민간운영의 한계로 명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층 넓고 다양한 사회를 지향하려면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피부색·언어·교육·출신 배경·능력 등 서로 다른 점을 가진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은 이미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적용 국가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선언 및 협약의 원칙을 전파시키기 위해 즉각적이고도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제네바에 소재한 한 국제인권단체 간부의 일침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주요 국제인권협약의 가입 및 비준에만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으며, 해당 인권기구의 심의를 끝내면 다음 심의 때까지는 권고와 협약 이행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인권침해의 논란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인권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승목·펄벅인터내셔널 한국지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