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가수 이문세를 만났다. 그는 고민 중이었다. 서세원의 공백을 메울 대형 토크쇼 진행자로 이문세를 점찍은 방송사 쪽의 끈질긴 요청 때문이었다. 방송이라는 것이 그렇다. 생방송이 주는 짜릿함과 들뜸, 분방함 등등에 모든 방송인이 빠지는 것처럼 그 역시 ‘중독’이 되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그래서 강력추천했다. “해보세요. 이제 좀 색다른 토크쇼, 격 있는 이야기쇼 좀 보았으면 좋겠어요.” 대충 던진 내 말에 그는 진지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세요? 전 자신 없어요. 방송을 그래도 좀 아는 사람이니까요. 누군들 그런 토크쇼 하고 싶어 하겠어요? 그 판에 뛰어들면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세상도 변했어요. 요즘 방송감각 따라가기도 부담스럽고….”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가 짊어지고 갈 ‘시청률압박’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이문세는 그 토크쇼를 포기했다. 나 역시 ‘진짜 가수니까, 그만 부추기자’ 했다.

그 이문세가 다시 방송에 복귀했다. 프로그램은 ‘사이언스 파크’. ‘자라나는 내 아들이 보았으면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사회를 맡았다고 했다. 돈과 요란한 박수가 따라오는 토크쇼가 아니라 내 아들이 재밌고 흥미를 느낄 ‘과학프로그램’의 MC를 선택한 것이다. 몇몇 TV출연자들은 인터뷰에서 “제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아이한테는 보지 못하게 하죠”라고 말한다. 사석에서 만난 한 프로듀서는 “제가 시청등급을 매깁니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줄어들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실정에 ‘저희 회사 간장, 저의 집에서 먹습니다’라고 밝히듯 TV 제작진도 고백한다면 과연 몇 개의 프로그램이 살아남을까 의문이다.

10대와 20대가 TV 앞을 떠나고 있다. ‘TV는 안 보면 좋은 것’이니 잘됐다고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여전히, 앞으로도 TV는 ‘무한한 가능성의 매체’이다. 이 TV의 장점을 살린다면 그 어떤 미디어보다도 훌륭한 교육매체가 될 수 있다. 지금 10대와 20대가 무조건 재미와 자극만을 추구하는 세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정보와 볼거리에 익숙해진 고급 시청자군이다.

결국 이들에게 TV가 의미있는 미디어가 되기 위해서는 ‘사이언스파크’와 같은 오락과 과학을 접합시킨 ‘가족용’ 고급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야 한다. TV를 보고도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처럼 뇌에 주름 한 줄 더 잡혔구나 하는 뿌듯함을 갖지 못하란 법이 없다. 항상 새로운 세트와 아이디어를 선보이며 고생하고 있는 ‘사이언스 파크’ 제작진의 가장 큰 고충은 ‘출연을 거부하는 이공계교수’들이라고 들었다. 연구에 골몰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언제 반나절을 잡아먹는 방송에 출연하느냐고 반문한다고 한다. 그 말도 일리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날이 줄어드는 이공계 지망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멍석’은 없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키는 것, 언제나 그러하듯 출연자나 시청자의 ‘사명감’과 ‘희생’도 뒤따라야만 한다. 특히 시청자의 몫은 반드시 보상 받는다.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