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싱가포르는 연이은 ‘샴쌍둥이(몸의 일부가 붙은 쌍둥이)’ 분리 수술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번 이란인 샴쌍둥이 수술 때는 수술을 한 래플즈 병원의 로비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백명의 기자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이번 한국인 샴쌍둥이의 수술 때도 한국의 언론사는 물론 AP·UPI·AFP·교토 등 주요 통신사 기자들이 대거 현지로 몰려와 사랑이 자매의 수술 성공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했다.
이번 샴쌍둥이 수술 성공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당신의 머리에 사랑이 자매 부모의 행복한 얼굴이 떠오른다면 귀하는 정말 순수한 사람이다. 한국인 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한 래플즈 병원을 운영하는 래플즈 메디컬그룹의 주가가 수술 성공 직후 8.8%나 폭등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알고 있는가.
계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수술 성공으로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의료 메카(중심지)’라는 이미지를 세계인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란인들도, 한국인들도 자국의 의료서비스를 마다하고 찾아간 나라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싱가포르는 전 세계를 상대로 막대한 홍보효과를 거두고도 남았다.
반대로 한국은 사랑이 자매 수술을 싱가포르로 빼앗김으로써 국제적인 홍보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격이 됐다. 쉽게 말해서 수억달러의 이익이 걸린 국제입찰에서 싱가포르는 승리하고 한국은 패배한 것이다. 아니, 당연히 우리 몫으로 챙겨야 할 국부(國富)를 싱가포르에 갖다바친 꼴이 됐다.
그러나 이를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한국의 의료진이 아니다. 정작 부끄러워 해야하지만, 전혀 느끼지조차 못하고 있을 사람들은 한국의 위정자(爲政者)와 정책당국자들일 것이다.
싱가포르가 '의료의 메카'로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온 리콴유(李光耀) 전 수상 등 싱가포르 위정자들의 미래전략 덕분이었다.
지금 싱가포르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중국이다. 경쟁력이 뛰어난 저가 제품을 쏟아내면서 전 세계의 돈과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아시아의 ‘블랙홀’ 중국, 바로 이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기존의 IT산업 외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의료나 교육서비스를 발전시켜 주변국의 돈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 싱가포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의료서비스 개발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 덕분에 싱가포르는 지난 2000년에는 세계 각국에서 15만명의 환자를 유치, 3억45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2012년까지는 100만명의 환자를 받아들여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다. 이 계획대로라면 1만3000여명의 고용이 창출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싱가포르는 이를 위해 ‘파르마’제약단지를 만들어 머크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을 유치해 놓고 있다. 이미 20억달러를 바이오 벤처회사에 투자했고, 2010년까지는 세계 15대 생명공학 기업을 데려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번 샴쌍둥이 수술에 대한 싱가포르 정부의 관심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고촉동(吳作棟) 수상은 이란인 샴쌍둥이 수술이 실패하자 래플즈 병원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이번 실패로 의료팀이나 래플즈 그룹의 사기가 꺾여선 안된다”고 격려했다. 고난도의 수술에 성공하는 환경과 노하우가 그저 생긴 것이 아니었다.
요 며칠 사이 한국정부는 세계의 석학들을 서울로 불러모아 놓고 ‘차세대 성장산업을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화려한 말의 성찬만 있었을 뿐 어떤 결론이나 결의는 엿보이지 않았다.
맥킨지 보고서는 “서울이 동북아 금융중심지가 되는 데 남은 시간은 길어야 2년”이라고 분석했다. 지금 한국은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호’에서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당장 행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지도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강효상·경제부장 hs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