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닥친 기적은 파멸을 잉태하고 있었다. 처지에 만족할 줄 알았던 미 워싱턴 DC 국선 변호인사무소의 ‘배곯은 변호사’ 클레이 카터(31). 4년간 사귄 레베카(28)의 ‘졸부’ 부모가 출세를 보장한다고 공언할 때만 해도, 악취 나는 제안을 거절할 줄 아는 양심이 그에게도 있었다.
인생 역전의 기회는 엉뚱했다. 클레이는 살인을 저지른 흑인 마약 중독자(20)의 변론을 맡은 뒤, 범행 배후에 은밀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음을 집단소송 전문 브로커 맥스 페이스에 의해 알게 된다. 살인범이 장기 복용했던 마약 중독 치료제는 재활시설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약사의 실험 시료이자, ‘충동 살인’을 부추기는 또 다른 환각제라는 정보를 의문의 남자 맥스로부터 얻는다.
클레이는 맥스가 꼬드긴 대로, 제약회사가 고소를 피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화해’를 지휘한다. 첫 집단 소송수임료로 거금 1500만달러를 받지만, 그것은 영혼을 판 대가였다. ‘나는 유죄일까?’ 그는 변해가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곤 하지만, 이내 자기 합리화라는 추락의 미끄럼틀로 향한다. 돈 벼락의 쾌감은 멈추질 않고 그를 충동질한다.
그에게 법은 추악한 영리사업이 됐다. 집단소송의 대가 패튼 프렌치와 손 잡고 난 뒤엔 더욱 그랬다. 한 제약사의 관절염 치료제에 부작용(방광 종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그는 TV 광고까지 내 소송 의뢰인을 모집하고 주가 조작까지 능숙하게 해 낸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광장에서, 불법 집단소송계(界)의 새 별은 사회적 약자를 등에 업은 추악한 전사(戰士)가 되어 칼춤을 춘다.
클레이는 돈(기부금)에 굶주린 백악관의 초청을 받고, 한 해 1억1000만달러를 벌어 변호사 수입 순위 8위에 오를 정도로 쾌속 질주한다.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에서 단박에 날린 3만 달러에 태연하고 농염한 패션모델 애인에게 흥청망청 애정을 베푸는 그의 행각은, 다른 남자에게로 떠난 옛 애인을 향한 목마름이기도 했다.
부도덕한 ‘기업 사냥꾼’에겐 사방이 적(敵)이었다. 어설픈 화해를 수락했던 소송 의뢰인도, 클레이의 급상승을 의혹의 눈으로 찬미했던 언론도, 주식 내부자 거래 혐의를 포착한 FBI도, 법정의 신성성을 지키려는 변호사도, 파산 기업의 해고 노동자도, 모두 그에게 저주를 보낸다.
17개월 만에 깨진 일장춘몽. 물욕(物慾)의 포로가 됐던 그에게, 돌아온 레베카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책(원제: The King of Torts)으로 ‘법정 스릴러(legal thriller)’의 제왕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그리샴(48)은, ‘법(法)의 과잉’과 법을 유린하는 ‘물신(物神)의 흡혈귀’를 특유의 긴박한 문체와 전직 변호사다운 정통한 시각으로 고발한다.
그리샴의 첫 순수 문학 소설 ‘하얀집’(원제: A Painted House, 신현철 옮김, 상·하 각 8500원)도 함께 번역·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