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요즘 이렇게 자문해볼지 모른다. “왜 국회의원 때는 잘나갔는데 대통령이 돼선 하는 일마다 꼬이고 비판받을까?”
결정적 이유는 그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뛰어난 웅변(修辭·rhetoric)만 가지고도 대중의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대통령은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자리다. 더구나 대통령직은 고도의 전문성, 종합 판단력, 결단력 및 무한 책임감을 지닌 지도자를 요구한다.
노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그 반대편 선상에 싱가포르의 선임지도자 리콴유(李光耀)가 연상된다. 리콴유는 1959년부터 1990년 물러날 때까지 국무총리로 재직하면서 독립을 주도하고 나라를 단결시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9위의 부강한 국가로 만든 주인공이다. 노 대통령이 ‘21세기 수평적 리더십’을 자처하는 미완(未完)의 지도자라면, 리 전 총리는 ‘20세기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대표하는 검증된 지도자다.
행정가로서 리콴유는 평소 정부 내 각종 자문위나 위원회 등의 설치를 최소화했다. 즉 국정운영상 불필요한 낭비를 막기 위해 참모조직(staff)보다 직계조직(line)을 중시하는 정통 조직관리 방식을 구사했고 필요하다면 라인의 최정상에 있는 대통령이 직접 점검했다. 리콴유가 과거 척박한 싱가포르를 30년 노력 끝에 지금의 ‘정원의 도시(City of Garden)’로 만들 때 그 흔한 자문위나 위원회 하나 두지 않고 스스로 관계 공무원들과 함께 직접 챙겼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노 대통령도 취지는 리콴유와 같았다. 취임 전부터 ‘작은 청와대’를 지향하고 권한은 내각에 위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청와대에 각종 자문위·보좌관제 신설 등으로 ‘몸집 불리기’가 역대 정권 중 제일이며, 부처들은 청와대 곳곳에 보고하고 눈치보는 데 급급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혼란이 일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라인을 강화하자’(부처 실권 위임)고 해놓고 실제로는 ‘스탭조직 강화’(큰 청와대)에 진력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예는 리콴유는 조직관리를 알고 노 대통령은 잘모른다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노 대통령은 평소 약자·소외계층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왔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를 통해 특권계층이 조장하는 분열을 극복하고 삶다운 삶을 누리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반면 리콴유는 ‘국가 지도자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계층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자본주의자도, 시장경제 신봉자도, 밀튼 프리드먼도 아니고 실행(Practice) 그 자체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다. 나는 가치있는 일이라면 시도를 한다. 만약 현실에 부합되지 않거나 작동되지 않는다면 원인을 규명하고 방법을 연구한다. 필요하다면 내 소신도, 제도도 바꾼다. 그래서 결국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에게 가장 가치있는 일은 이념도, 명분도 아니라 “더욱 많은 국민이 더욱 많은 행복과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라 건설”이었다. 노 대통령이 노동문제 변호사를 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어깨 너머로 공부했다면 리콴유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학시절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었다. 그는 1954년 귀국 후 인민행동당을 창설, 사회·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회주의란 너무나 값비싼 제도일뿐더러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들과 결별했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국민 참여정부’를 내세우며 국민의 여론을 중시하며 탈(脫)권위를 외치는 분권형 지도자를 천명하고 있다면 리콴유의 입장은 정반대다.
“나는 결코 여론조사나 인기도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런 지도자는 약한 지도자다.…만약 어떤 일이 할 가치가 있다고 결정하면 나는 영혼과 마음을 몽땅 쏟아붓는다.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릴지라도 내가 그 일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일을 하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가 할 일이다.”
리콴유는 이어 “지도자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비전은 자칫 우리 모두를 파괴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선 대정치가의 촌철살인(寸鐵殺人)적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함영준 주간조선 편집장(yjhah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