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군 격포항에서 뱃길로 40분. ‘핵폐기물 저장시설’ 단독 후보지로 지정된 위도(蝟島)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소나무가 섬 전체를 빽빽하게 덮고 있었다. 섬 생김새가 고슴도치를 닮아 이름 붙여진 위도. 원래 변산반도 국립공원 지역의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지난 93년 292명이 숨진 ‘서해페리호 침몰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섬 둘레 순환도로를 따라 돌아보니 부둣가에서 한가롭게 낚시하는 강태공들과 어망을 짊어지고 배에 오르는 어부만을 만날 수 있을 뿐 핵폐기장을 떠올릴 어떤 표식도 없다.
하지만 ‘핵폐기장 위도 유치위원회’ 부위원장 백은기(53)씨는 “핵폐기장이 들어서고 정부에서 관광단지를 유치하면 주민 수입도 늘 것 아닌가”라며 “다들 (유치하기) 싫다고 하는데 누군가 해야 할 일 아니냐”고 말했다. 백씨는 “안전 문제를 걱정하지만 전문가들이 (핵폐기물 처리장을) 껴안고 자도 괜찮다고 하고, 또 영광 원자력 발전소도 위도에서 20㎞ 떨어진 데 있는 마당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위도 면사무소의 한 직원은 “나라를 위하는 일이랑게 잘됐으면 좋겠지만, 보상 문제나 개발사업이 주민들 기대만큼 될런가 모르것소”라며 “맥없이 위도 주민들이 들뜨기만 한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작은 수퍼마켓을 하는 김모(여·48)씨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니 가구당 3억원은 안되겄소”라며 “그 돈이면 빚도 갚고, 여기서 또 살 수도 있다고 하니 주민들한테도 좋은 일 아니것는가”라고 말했다. 위도에서 태어나 도회지 생활을 하다 4년 전 귀향했다는 서대석(51)씨는 “핵시설이 들어서는 문제도 걱정이지만, 풍선처럼 부푼 순진한 섬 사람들의 기대가 깨어지면 그때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보상에 대한 불안감은 커 보였다. 구멍가게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이 “군수가 고렇게 해주지 않컸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주민도 “나도 지난달 한국수력원자력공사에 견학 가서 안전은 문제없고, 직접보상도 된다기에 도장 찍었지 솔직히 장이 끓는지 국이 끓는지 모른당게”라고 맞장구쳤다.
이런 분위기는 육지로 나오니 확 바뀌었다. 위도 주민들이 ‘개발과 보상’에 대한 기대로 핵폐기장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면, 3000억원의 정부지원금과 2조원에 이르는 투자유발효과에 대해 육지의 주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쪽이다. 같은 군(郡) 안에서도 위도 주민과 육지의 부안군민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의 새만금 공사 중단 결정까지 내려지는 바람에 김종규 군수가 “새만금 사업이 중단되면 위도 폐기장 유치 신청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밝혀 이래저래 핵폐기장은 최종 후보지로 결정되기도 전에 내홍에 휩싸이고 있다.
부안군청에서는 후보지 신청 철회와 군수 면담을 요구하며 청사로 진입하려는 100여명의 군민들과 이를 막는 전경 15개 중대와 대치 중이다. 군청으로 통하는 길에는 경찰이 시위대를 막기 위해 대형 트럭들을 바리케이드처럼 주차해 놓았다. 반면 주민들이 도로 중간중간에 내다버린 트랙터들도 보였다. ‘핵폐기장이 생기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농기계를 반납한다’며 전날 내다버린 것이다. 주민 김현채(44)씨는 “군의회도 반대한 핵폐기장을 군수가 왜 추진했나”라며 “우리 손으로 찍은 군수가 이럴 수는 없는 것이제”라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부안군민들은 사흘째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며 초·중학생 자녀들의 등교를 막고 있다. 16일 현재 등교 거부에 들어간 초·중학교는 변산면의 격포초등학교와 변산성중, 진서면의 곰소초등학교와 변산중학교 등 4개교에 293명이다. 학부모들은 “위도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건강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 유치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격포에서 어민회장을 맡고 있다는 고광준(39)씨는 “이웃 영광에 원자력발전소 지을 때 정부에서 10조원 들여 지역발전시킨다고 선전했지만 별로 혜택이 없었다”며 “위도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도 어차피 우리 몫으로 떨어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