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ref="http://bookshop.chosun.com/books/book_detail.asp?goods_id=0100004774850">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인간이 태어나서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속한 나라에 대한 사랑이다. 나라를 세운 이야기를 듣고, 민족의 역사를 배우며, 국기(國旗)와 국가(國歌) 등 나라를 상징하는 것들을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대다수 사람들에게 나라의 이름은 결코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월드컵에서 전국에 메아리친 ‘대~한민국’에는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나라에 대한 사랑이 고도로 응축돼 있었다.

이런 애국주의를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애국주의는 이른바 세계시민주의와 조화할 수 있을까. 그것이 조화하지 못한다면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지난 봄 이라크 전쟁 파병을 둘러싼 논란은 이에 대한 또 다른 사례다. 국익을 위해 파병이 불가피하더라도 다른 나라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도덕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면 파병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조슈아 코언이 편집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For Love of Country)’은 바로 이 애국주의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원래 1994년 ‘보스턴 리뷰’ 잡지의 애국주의 논쟁에 참여한 11편의 글에 새롭게 쓰여진 5편을 덧붙인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인문학자·사회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논쟁은 1996년 책으로 묶여나온 이래 갈수록 그 빛을 더하고 있다. 점증하는 세계화, 야만의 테러와 전쟁은 애국주의를 넘어서 세계시민주의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적극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의 출발은 시카고 대학의 법학·윤리학 교수인 마사 너스봄이 주창한 세계시민주의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에게 가장 고귀한 충성의 대상은 인류 공동체며, 우리의 실천적 사고의 제1원칙은 인류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의 가치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결국 호전적인 대외 강경주의나 배타적 국가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대신 세계시민주의가 우리 삶의 1차적인 가치 기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너스봄의 문제 제기에 대한 대응은 애국주의를 지지하고 세계시민주의를 비판하는 입장(벤저민 바버 등), 세계시민주의를 제한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콰미 앤서니 애피아 등), 애국주의 대 세계시민주의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는 입장(마이클 왈저 등) 등 세 흐름으로 나눠진다.

이 가운데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세 번째 견해인데, 주디스 버틀러, 에이미 거트먼, 임마누엘 월러스타인 등은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지할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생산적 절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그 논쟁이 매우 흥미롭고 진지하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면서도 동의와 이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애국주의냐 세계시민주의냐의 뜨거운 이슈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이라크 전쟁 파병을 둘러싼 논쟁을 돌아볼 때, ‘글로벌 스탠더드’가 갖는 문화적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이중성을 생각할 때 이 책이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라를 무조건 사랑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책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