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송강호(36)가 술자리에서 후배 박용우(32)에게 물었다.
“용우야, 너는 언제 제일 외롭냐?”
“글쎄요. 혼자 사니까 외롭고, 여자 친구가 없어서 외롭죠.”
송강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짜식. 형은 연기할 때 제일 외롭더라. 너, 그걸 알아야 한다.”
KBS 1TV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 경대승 장군 역으로 캐스팅된 박용우가 요즘 “카메라 앞에 서면 배우는 처절하게 혼자가 된다”던 송강호의 말을 곱씹고 있다.
희고 단정한 얼굴 때문에 그는 대개 가볍거나 부드러운 인물을 연기해왔다. 가령 영화 ‘쉬리’에서는 어항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신참 정보요원, ‘무사’에서는 적군이 보이기 무섭게 허둥지둥 죽은 척하는 잇속 빠른 역관(譯官)이었다. 중앙대 영화과를 졸업한 뒤 95년 MBC 탤런트 공채 25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지만, 대중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2001년 방영된 미니시리즈 ‘선희 진희’ 정도. 그는 손예진과 김규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재벌 2세로 나왔다. 소주병을 끼고 앉아 “난 얼굴 때문에 멜로만 하다 끝나겠다”고 진지하게 절망한 적도 있다.
그러니 경대승 역할은 대단한 기회다. 경대승은 무신정권 실력자의 아들로 태어나 10살에 천문 지리를 꿰뚫어보고, 26살에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서른 살에 요절한 청년 장군이다. 부친이 축재한 재산을 군에 헌납할 만큼 결벽한 사나이였으며, 순전히 극적 재미를 고려한 설정이긴 하지만 정적(政敵)의 딸과 안타깝게 엇갈리는 연애도 한다.
“경대승은 너무 따뜻해서 일찍 죽은 사람이에요. 이 멋진 사내가 열정과 분노를 꾹꾹 눌러 삭이는 모습을 제대로 잡아내려고, 날마다 혼자 동틀 때까지 대본을 외고 있어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새벽에 하도 목청껏 떠들기에, 혼자 사는 사람이 대체 누구랑 저렇게 싸우나 걱정했다’고 타박하시더군요.”
그는 다음주부터 경북 문경 촬영장에 내려가 30㎏짜리 갑옷을 입고 촬영에 들어간다. 화면에는 오는 26일 방영되는 49회분부터 등장한다. 영화 ‘무사’를 함께 찍은 후배 배우 주진모(28)가 ‘무인시대’ 촬영에 대비해 서울 보라매공원 액션스쿨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몸을 만드는 박용우를 보고 “형이 웬 장군이야?” 했다고 한다.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죠.” 박용우가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