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삼각형', '소리없는 아우성'.
수식하는 단어와 수식받는 단어가 이처럼 상호 모순되는 것을 '형용모순'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형용모순'이란 단어를 본격 사용하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다. 계기는 그 무렵 번역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때문일 것이다. 논박의 귀재였던 마르크스는 상대 주장을 반박하는 결정적인 무기로 이 '형용모순'을 즐겨 사용했고 '자본론'에서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예를 들어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은 상품 안에는 사용가치만 있을 뿐 교환가치는 다른 상품과 교환하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생겨나는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한때 모순(矛盾)은 진리가 전진을 멈추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변증법(辨證法)이 등장하면서 모순도 진리의 한 요소가 되기에 이르렀다. 20세기 이념사는 모순을 진리의 적으로 생각하는 세력과, 모순도 진리라고 믿는 세력의 한 판 대결이었다.

변증법을 피하며 모순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역설(逆說·paradox)이다.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을 독려하며 했다는 말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이 진리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시인 유하가 감독한 영화의 제목 “결혼은 미친 짓이다”도 결혼에 관한 지독한 역설이다. 실제 미친 짓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물론 역설이 아니라 사실진술이겠지만.

대개 역설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는 인간이 극한상황에 처해 있을 때다. 북한의 경제계간지 ‘경제연구’는 최근 “평균주의 분배는 노동의욕을 저하시킨다”며 “일한 만큼 받는다는 사회주의 분배원칙” 실시를 촉구했다고 한다. 평균주의 분배가 사회주의의 원칙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것도 대단한 역설이다. 북한이 극한상황에 이르렀다는 뜻인가.

미국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는 ‘한국이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를 실어 화제가 됐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 한국민의 속성이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배고픈’ 북한은 사회주의로 포장된 자본주의를 하겠다고 설치기 시작하고, ‘배부른’ 남한은 자본주의로 포장된 사회주의 하자는 이념이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 이러다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역설이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한우 논설위원 h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