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한 노조 지도자는 집으로 가라!”
지난 6월 18일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주주총회는 노조의 경영참가를 보장하는 독일형 ‘사회적 자본주의’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파업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치면서 경영에도 관여하는 노조 간부들에 대해 주주들이 공개 반발한 것이었다.
주주들을 흥분시킨 사람은 프랑크 브시르스케 전국 서비스노조연합 회장이었다. 그는 다른 독일 기업 노조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루프트한자 직장평의회 부의장이란 직함을 갖고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외부에선 회사 경영진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날 주총에서 소형화물 운송업자를 대표한 한 주주는 브시르스케가 작년 12월 서비스 분야 파업을 주도한 것을 물고 늘어졌다. “파업으로 루프트한자는 상당수의 항공편 운항을 취소해야 했다”며 책임질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어 개인투자자 협회를 대표한 주주 등이 일어나 “부시르스케는 집으로 가라”를 외쳤다. 한 독일인 저널리스트는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2차대전 이후 독일 사회를 지배하던 ‘노조 황금시대’가 끝났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노조의 경영참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루프트한자 소액 주주들은 그런 전통을 더 이상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회사를 망친 책임을 노조도 함께 질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주들이 들고 일어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현재 독일 경제는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릴 만큼 쇠약해졌고, 그 원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노조에게 너무 많은 힘을 주었기 때문”(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이라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다.
세계 최고로 칭송받던 독일의 노동생산성은 이제 선진국 중 밑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에 비해 노동자의 생산성은 15%(2000년) 낮고, 근로자 1명에게 들어가는 시간당 노동비용은 24.89달러(2002년)로, 미국보다 20% 비싸다.
‘일본의 실패’를 외치던 이코노미스트들은 이제 ‘독일형의 종언’을 더 자주 언급하고 있다. 독일의 경제위기는 정부 규제와 방만한 복지 시스템, 경직된 노동시장이 결합된 ‘시스템의 실패’라는 결론이 내려져 있다.
독일 히포페어인스은행 월프강 지글러 이사는 “회사가 어려운데도 임금 인상에다 과다 복지를 요구하고, 파업을 강행하는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반성 아래 슈뢰더 총리는 영미형 시장주의 원리를 도입하려는 ‘아젠다 2020’ 개혁 프로그램을 들고 나섰다. 노동자 해고규제의 일부 완화와 실업수당 삭감, 임금인상 억제 등 노조에 유리했던 제도를 수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저항도 많지만, 현재로선 독일이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뮌헨=김수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