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李純鐘

2. 허실(虛實)

근자에 동네에 도둑이 많이 들었다. 중문(重門)에 담을 튼튼하게 둘러친 집 치고 도둑질을 면한 경우가 드물었다. 이는 병법에서 말하는 허허실실의 꾀라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일찍이 성문을 활짝 열고서 거문고를 연주하니, 적군이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近日洞內多樑上君子. 重門厚墻之家, 鮮免其偸. 獨我無墻者尙免. 此在兵法, 虛虛實實之術也. 諸葛孔明嘗開門鼓琴, 賊不敢犯.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잡설(雜說)〉

솟을대문에 높은 담을 둘러친 집은 도둑이 노리는 바가 된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소중한 재물 안 뺏기려 한 것이 도리어 도둑질의 빌미가 되었다. 저만 누리려 드니 같이 누리자고 훔쳐간다. 다 가져가라 하면 가져갈 것도 없다며 그냥 간다. 잘 익은 알곡이 고개를 숙인다. 자신을 낮춘다. 든 것도 없이 쟁그렁거리다가 공연히 도둑을 부른다. 성문을 활짝 열고 혼자 나와 거문고를 연주해도, 적들이 제 발 저려 범접치 못하고 달아났다. 높은 대문, 두터운 담장 안에 고작 재물이나 쌓아두고 큰소리 쳐 봤자 알아주는 사람은 도둑뿐이다. 하물며 그 재물이 제것이 아님에랴. 훔친 것임에랴.


◆김창흡은
본관 안동. 자 자익(子益). 호 삼연(三淵). 시호 문강(文康). 서울 출생.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壽恒)의 셋째 아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형 창집(昌集) ·창협(昌協)과 함께 은거했다. 1721년(경종 1) 집의(執義), 다음해 세제시강원진선(世弟侍講院進善)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성리학에 뛰어나 형 창협과 함께 이이(李珥) 이후의 대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