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高宗)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합장 능(陵)인 사적 제207호 홍릉(경기도 남양주시 금곡 소재)에서 명성황후의 공덕을 칭송하는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30일 홍릉의 침전(寢殿·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봉분 앞에 지은 집)을 보수 공사하던 중 세로 0.95m, 가로 12.9m의 붉은 비단에 쓴 상량문이 한지에 싸인 채 나왔다고 발표했다. 홍릉 침전에서는 또 재해 방지를 기원하기 위해 ‘물 수(水)’ 자를 새긴 육각형의 은판(지름 45㎜, 두께 0.8㎜) 3점도 함께 발견됐다.
광무 5년(1901년) 8월 21일자로 된 홍릉 상량문에는 을미사변(1895년) 때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모로서의 덕망과 애국심에 대한 칭찬이 씌어 있다. “두터운 은혜가 널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미쳤고[惠渥溥覃於貧窮孤獨] 만세에 계속될 종묘사직의 기틀을 공고하게 했다[鞏固萬歲宗社之基]”는 것이다.
명성황후는 시해된 지 2년 만인 1897년 청량리 홍릉에 안치됐지만 풍수적으로 불길하다는 주장에 따라 1901년 이장지(移葬地)로 남양주 홍릉이 완성됐다. 그러나 명성황후 유해는 계속 청량리 홍릉에 모셔져 있다가,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 남양주 홍릉으로 옮겨져 고종과 합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