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배 문화부차장. <a href=http://db.chosun.com/man/>[조선일보 인물 DB]<

"불황이 깊어지면 미국에서는 영화관이 들끓고, 일본에서는 서점이
북적댄다. 한국에서는? 소주·삼겹살 집이 시끄러워진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일면의 진실이 담겨있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21세기는 지식기반
사회가 될 것이라고들 하면서, 정작 중요한 지식인프라 중 하나인 책은
오히려 홀대하고 있다.

출판계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는 출판계 사람들이지만, 이번
만큼은 엄살이 아닌 것 같다. 이들은 요즘 "IMF 때보다 더 책이 안
팔린다"고 야단이다.

올들어 일부 메이저 출판사들의 매출은 30%, 많게는 50%까지 감소했다.
서점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도서정가제로 할인을 할 수 없게 된 인터넷
서점들은 작년에 비해 절반 이상 매출이 곤두박질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인터넷서점 예스24는 누적적자를 견디다 못해 최근 주인이
바뀌었다. 매출 감소는 책 발행 감소로 이어지고, 일감이 줄어든 인쇄소
사정도 다를 게 없다.

매출이 줄어들자 대형 서점들은 책을 싸게 공급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심지어 50%까지 마진을 요구한다고 출판사들은 아우성이다. 매출부진에
마진감소가 겹쳐 이중의 경영압박에 처해 있는 것이다. 큰 출판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들은 서점을 상대로 마진 폭을 조정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수금(收金)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세한 출판사들은 막강한 대형 서점들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출판계가 불황의 수렁에 빠져들고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불황,
도서정가제, 출판유통의 난맥상, 역량있는 편집자 부재, '읽을 만한
책이 없다'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책 안 읽는
풍토다. 한 출판인은 "젊은층이야 으레 그렇다 치지만, 요즘은
어른들까지 틈만 나면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수준의 인터넷 보급률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세계 최저수준의 책읽기로
귀결되고 있는 추세다.

지식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대학 도서관은 이미 고시원으로 바뀐지
오래며, 무협지가 대출순위 1위를 차지하는 대학도 있다. 몇 년 전 한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한국의 지식인은 5000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출판사가 세계적인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내면서 초판 3000부를 찍었더니 '예상 외'로 3000부가 모두 팔렸다.
그래서 2000부를 추가로 찍었는데, 이번에도 다 나갔다. 이에 고무된
출판사는 2000부를 더 찍었으나, 이번에는 책이 거의 안 팔리더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은 5000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그는
냉소적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이다.
요즘 인문서를 내는 출판사들은 초판을 1500~2000부 찍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소화하기 힘든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개그맨들이 공중파 TV에 나와 "책, 책, 책을 읽자"고 악을 쓰는 나라는
아마 전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식의 반짝 독서 진흥
프로가 장기적으로 독서인구의 저변을 넓히는 데 성공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경기가 나빠지면 소주 소비가 늘고 삼겹살 집이 북적댄다는 말은
불행히도 우스갯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전국의 산하, 경치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끝없는 음식점과 러브호텔의 행렬을 보라. '먹자
천국' '놀자 천국'에서 '마음의 양식'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