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신문에는 일반 독자들이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지난 20일 노무현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하고 기념촬영한 이 사진에
등장한 뒷줄의 22명은 마치 복면이라도 쓴 것처럼 얼굴이 검은색 원으로
가려져 있었다. 사진 속의 얼굴 없는 인물들은 그 직책과 신원이
국가기밀로 분류되는 국정원의 실·국장급 간부들이다.

그런데 한 인터넷 신문이 무려 39시간 동안이나 이들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국정원 간부들의 정체가 모두 공개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해
'개혁'을 주문하고, 이에 국정원측이 '정보 활동 강화'를 다짐한
바로 그날 벌어진 일이다. 보안과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제 국정원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문제의 사진은 유출된 게 아니라, 청와대측이 평소 코드가 맞다고 해서
노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언론과의 첫 인터뷰 상대로 골랐던
친(親)정부적인 성향의 인터넷 신문에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
전속사진팀 소속 7급 직원이 "별 문제가 없겠거니 판단해서" 사진을
줬다는 것이다. 이것은 청와대 스스로 자신들의 아마추어적인 운영
시스템만이 아니라, 운동권 출신들이 청와대의 핵심에 들어선 이후
청와대 내부의 안보의식과 보안감각이 도대체 어느 수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오죽하면 문제의 인터넷 신문까지 "최초 좋아하는 청와대, 세계 최초로
국정원 '스파이 대장' 22명 얼굴 공개"라며 "국정원 개혁의 칼을
빼어든 아마추어 권력의 위세에 주눅든 국정원 프로들의 복지부동에서
(실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을까. 게다가 청와대나
국정원은 '국정원 보안업무관리 규정'에 위배되는 문제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 있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일부 언론의 질문을 받고
나서 부랴부랴 삭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말 나라의 앞날이
불안하고 우리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