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변화하고 있는가. 국정난맥, 국정대란을
겪으면서 아마추어 정권이란 오명(汚名)에 집권 100일의 노 대통령의
직무에 대한 지지도가 40%대에 머무는 '최악의 상황'을 지나면서, 노
대통령이 '이념'에서 '현실'로 점차 다가가고 있다는 지적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최근 각종 파업사태, 특별검사 기간 연장
문제, 민주당 신주류가 추진중인 신당창당 문제 등 중요한 국정현안에
대한 노 대통령의 선택이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국가정보원에 대해 일반 정책·갈등 조정을 계속 하도록 하고, 국정원
'보고'를 정독(精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노동 문제다. 집권초만 해도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최근엔 이 문제에 대해 입만열면 독설(毒舌)에
가까운 비판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일 정부 중앙부처 국·실장들과의 대화 자리에선
철도노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가 사용자 측과의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럴 경우 정부 당국자들은 강하게 대처하라는
내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19일에도 노조운동 자체를 문제삼았다. 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 자리에서 "과거에는 노동운동이 생존권이나
사회민주화 운동 차원에서 이뤄져 정당성을 가졌으나, 최근에는 일부
노동운동이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어가고 있어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철도와 조흥은행 파업 관련 보고를 받은 뒤였다. 노 대통령은 "명분이
옳으면 정부부처나 공무원이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임하라"라고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4월초 KBS 노조에 불만을 토로할 때, 지난 5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둘러싼 파동 당시 전교조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할 때완 양상이 다르다. 당시만 해도 자신의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집단에 대해 상당한 애정(愛情)을 토대로
하고 그 애정을 몰라주는 개별 노조에 대한 '불만표출' 양상이었다면
최근엔 노조운동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의 노조에 대한 입장 변화에 대해
"그동안엔 '대화와 타협'에 무게를 뒀던 게 사실이나 앞으로는
원칙대로 하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재계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에 대해, 지금처럼 전투적 노조운동을
그대로 뒀다가는 경제에 치명타를 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결과로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15일 기무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군 수뇌부와 골프를
함께 치고, 21일 군 고위간부들과의 만남에서 국방력 강화를 유달리
강조한 대목도 변화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9일 국정원 방문에서도 노 대통령은 직원들을 향해 "여러분은 소중한
사람" "그야말로 정보전문가가 되라"는 등 '애정섞인' 말들을 했고,
국정원의 기능에 대해서도 정책 및 갈등조정 정보를 계속 하라고 했다.
또 민주당 신당창당 문제와 관련, 그동안의 '개혁신당 창당' 입장에서
상당부분 후퇴, 당내 각 세력간 합의를 통한 '통합 신당'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읽힌다. 한나라당의
"국정파행"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한 연장 불가
입장 쪽으로 기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국정기조가 바뀐 탓인지, 아니면 위기국면
탈출을 위한 전술적 후퇴인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집권기반의 강화없이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의
산물 아니냐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