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을 향한 끝없는 도전, 그게 바로‘철인 정신’입니다.”그녀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함으로써 삶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오직 달리는 것 하나만 생각해야 완주할 수 있습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아득해지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터질 듯한 심장의 박동소리만 내
몸을 울리죠."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의 간판
오상미 (28·서울여대4). 1m63, 54㎏의 평범한 체격과 앳된 얼굴만 보면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트라이애슬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녀를 넘볼 상대가 없다. 2주 전 통영시 한산도에서
열린 국제 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4년 전
제주도에서 열린 철인대회(수영 3.9㎞,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 도합 226.295㎞)를 11시간3분29초에 완주한 그녀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녀에게 트라이애슬론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막
세상을 알기 시작한 4살 때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감각신경성 난청을
앓게 됐어요. 평상시에도 주위 소음이 섞여 들려와 바로 앞에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어렵죠."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들은 내성적인 오상미에게 맨 앞자리를 내주곤 했다. 하지만
정확히 들을 수 없었던 그녀는 수업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말투도 그녀가 더욱 자신만의 '섬' 안으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수영은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됐다.

"중·고등학교를 지나오며 외로움과의 '동거'에 익숙해졌어요. 그땐
절박하리만치 삶의 돌파구가 필요했죠. 결국 트라이애슬론이 해답이었던
거죠." 막상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가족들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운동"이라며 극구 만류하던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딸에게 "괜찮겠냐"며 조심스럽게 '철인의
길'을 허락했다. 오상미는 보기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뛰고 달렸다.
아버지는 지난 94년 여름 충남 대천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 처음
출전한 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비가 내렸어요. 파도도 높았고. 쟁쟁한 남녀 선수 150명 정도가
출전했는데, 수영 반환점을 가장 먼저 돌아나온 게 이 녀석이었어요.
자그마한 아이가 수영복 차림으로 사이클을 타고 선두로 질주하자 대천
시내가 떠들썩 했죠. 결국 여자부 3위를 기록했는데 어찌나
대견하던지…."

그는 10여년간 출전한 트라이애슬론·철인·마라톤·사이클 대회가
60여회. 한 달에 4개 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 말 그대로
'철녀(鐵女)'다.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올림픽 코스)를
잇달아 주파해야 하는 경기.

"욕심을 부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눈앞이 아득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끊임없이 다독이고 고통을 이겨내야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어요."

그의 집 거실에는 국내외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 40여개가 천장까지 쌓여
있다. 상자에 차곡차곡 담긴 메달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99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여자부 2위, 같은 해 동아마라톤 여자부 우승
타이틀이 새겨진 상패도 눈에 띈다.

"그동안 출전한 대회에서 단 한번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한 번
주저앉은 자는 또다시 쉽게 포기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죠."

맹호부대 소총수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죽을 힘을 다해
헤엄치고 페달을 밟고 뛰어라. 전쟁에서 2등은 없다"며 막내딸을
다그쳤다고 한다. 유일하게 완주하지 못한 2000년 일본
미야코지마(宮古島) 대회는 체력이 달려서 포기한 게 아니었다. 휘어진
사이클 바퀴가 문제였다. 지난해 봄 오상미는 훈련 중 왼쪽 복사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당했다.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오상미는
"통증보다 다시 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두렵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때 박은 철심 3개는 아직도 남아있다.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는 경기에 도전, 저는 승리했다고 자부해요.
트라이애슬론은 제 생각을 긍정적으로, 제 성격을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돌려놨잖아요."

오상미는 인천 송도 해안도로와 실내수영장에서 매일 3~4시간의 개인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지도자는 물론 후원자도 없다. 수백만원짜리
경기용 자전거도 사기 어렵다. 이번 대회에서 탄 자전거는 지난 2000년
제주도 철인대회에 참가한 일본 선수가 주고 간 것이다.

국내에는 여자 실업팀이 단 한 곳도 없다 보니 같이 훈련하던 '철인'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사이클팀 등으로 둥지를 옮겨가기도
한다. 올여름 학기에 졸업을 앞둔 오상미도 확실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지난 봄 수영강사로 일하기 위해 스포츠센터 몇 군데를 찾았지만
세상의 '벽'을 절감하고 있다. 숱한 핸디캡을 혼자 헤쳐 나온
그녀였지만 표정 한구석에 순간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난 할 수 있어요. 경기 때마다 죽을 것 같은 피로와 갈증도 다
이겨냈잖아요. 끝없는 도전, 그게 바로 '철인 정신'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