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대학생과 시민·지식인 등 수천명의 반(反)정부 시위대가 17일
오후(현지시각) 테헤란대학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소요사태가 연
8일째 이어지면서 최고지도자(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등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들이 이끄는 신정(神政)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 시위대의 요구 =17일 시위대는 강경 보수세력 지지자들의 폭행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차량을 몰고 집결했으며, 경적을 울리면서 반체제
구호를 외쳤다. 테헤란대학에서 15㎞ 떨어진 파르스 지역 등 전국
곳곳에서도 산발적 시위가 발생했다. 이란의 학생통신 ISNA는 "서부
도시 하마단에서는 16일 밤 일어난 시위로 경찰관 10명이 부상해 1명은
중태에 빠졌으며, 시위대 12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신(神)의 통치'가 아닌
'인간에 의한 정치'다. 시위 학생과 시민들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신(神)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누려온 하메네이의 하야(下野)를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는 국가 운영을 장악한 성직자들의 퇴진과 언론자유, 여권(女權)
신장 등 세속적 민주주의, 과감한 개혁, 서구문화에 대한 개방 등을
촉구하고 있다. "성직자들이 신의 자리에 앉아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단(異端)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한다.

16일에는 개혁을 지지하는 대학 교수와 언론인·작가 등 지식인 248명이
시위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최근 개혁파 의원 135명이 하메네이에게 보낸 민주적 개혁
촉구 공개서한에 대한 지지도 천명했다. "국민은 지도자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비판할 권리가 있으며, 만족하지 못하면 그들을 해임하거나
축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 무력한 개혁파 대통령 =시위대와 반정부 인사들은 온건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한 지 6년이 지났지만, 비(非)선출
권력기구를 독점한 보수·종교 세력의 조직적인 방해와 압력으로
개혁·개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학생·언론인·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인신 구속과 살해행위, 민주적 개혁
성향의 신문·잡지 폐간, 정부의 개혁법안 거부 등이 계속돼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이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에선 성직자의 통치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의 소요사태는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와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개혁파의 권력투쟁 양상도 보여주고 있다. 시위에는 하메네이의
신정체제와 끊임없이 갈등을 겪어온 하타미 대통령 지지자들과 지난해
하메네이의 통치권에 이의(異議)를 제기했다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반체제
인사 하셈 아가자리 등 개혁파 사회 지도층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1997년 하타미의 대통령 당선과 2001년 총선으로 개혁파가 득세한
행정·입법부는 보수적인 성직자들로 구성된 사법부와 대립을 반복해
왔다. 보수세력의 핵심이자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와 개혁파가
대결하는 양상이 빚어졌다.

하타미 정부는 1979년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이후
혁명수호위원회가 보유해온 '후보 심사권'을 폐기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마즐리스(의회)에 제출하는 등 보수파들의 권한 축소를 꾀해
왔다. 하메네이의 직속 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는 각종 선거의 후보자들을
사전 심사, 입후보 여부를 결정해주면서 개혁파들의 정계 진출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 보수파 관망 =사법부와 군대·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파들은 시위
추이와 국제사회의 반응을 관망하며 강경진압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데다 핵 개발과 알카에다 요원
비호(庇護)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이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시위대의 주장에 동조하며 지지를 표시하면서도 공개적인
지원에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반미정서가 강한 이란에서 자칫
개혁파가 미국의 사주를 받는 것으로 낙인찍힐 경우, 개혁·개방은커녕
보수파들의 입지만 더욱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