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가 첫 작품으로 내놓은 개편안은 시청자 위주가 아니라 특정인과 특정 집단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취임 후 “시청률이 떨어져도 공익성을 높이겠다”던 공언과는 달리 2TV의 질 낮은 오락프로그램은 그대로 두고, 공공성을 우선해야 할 1TV에 정치색이 짙은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은 방송을 특정 정파 또는 특정 이념의 도구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갖게 한다.
우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온 ‘역사스페셜’을 폐지하고 ‘인물현대사’를 신설한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운동가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숨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현대 인물 100인 가량을 재조명 한다는데, 인물의 선정 기준이나 이들을 비추는 시각 역시 촛불시위나 서해교전을 보도했던 그간의 태도로 보아 걱정스럽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기간방송이 대학에서 하는 이른바 ‘의식화 교육’을 전 국민을 상대로 확대하는 사태와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더욱이 그 프로의 진행자로 내정된 문성근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핵심 멤버로 선거 과정에서 맹활약했던 장면을 국민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 문씨를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이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 자체가 KBS의 공정성을 흔드는 것이다.
말로는 방송의 독립성을 외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전도사를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정연주 사장이 기용하면서 국민보고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믿으라고 한다면 억지도 보통 억지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KBS의 개혁에 기대를 했으나 결과는 또 실망이다. 불과 얼마 전에 “KBS가 상업주의에 매몰되고, 시청률 경쟁의 노예가 된다면 더 이상 공영방송으로 머물 이유가 없다”던 정 사장이 시청률과 상업주의를 다시 끌어 안으면서 정치적 당파성을 더 짙게 만든다면 ‘공영다운 공영방송’은 더 멀어져 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