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에 참석한 김미혜·서혜경·최성재 교수와 강병만 사무국장(왼쪽부터)은“노인부양을 가족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빨리 국가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다.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2%(339만명)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2019년이면 노인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 사회'가 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린 기간이 프랑스(115년),
독일(50년) 등 서구에 비해 엄청나게 짧다. 특히 한국은 40~50대에
일자리를 잃은 '젊은 노인'들이 양산되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로 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만큼, 정부가 노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편집자주

◆ 가족 부양체계 이미 무너졌다

=예전에 '버려진 노인'은 저소득층에 국한된 문제였다. 먹고 살기
힘들어 도저히 노부모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패륜(悖倫)'을 선택했다. 그런데 요즘은 중산층 사람들도 더 이상
노부모를 모시기 힘들다며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부모가
오랫동안 병을 앓는 경우, 가족이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문제는 자식들을 키우느라 그간 번 돈을 모두
써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이 노부모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 자식들도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함께 살며 병수발은 가족이 책임지더라도, 노인들의
생활비와 의료비는 국가에서 부담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들도 자식들 공부시켰으면 그만이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상담을 해보면 돈 때문에 부모·자식 관계가
끊기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자식들이 어머니와 의절하는 사례도 있고, 심지어 재산을 탐내 노부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노인 문제를 복지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내 모든 사람들의 인성 교육
측면에서도 바라봐야 한다.

=국가가 가난한 노인들을 돌볼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무조건 '부모를
버리는 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가족으로서의 윤리는 지켜야겠지만 우리는 모든 문제를 과도하게 개인
책임으로만 떠넘기고 있다.

◆ 빈곤층 노인 “자식 있는 게 더 서러워”

= 현재의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제도에도 문제가 많다. 현 제도에서는
호적상 자식이 있으면 자식의 부양 여부에 관계없이 국가로부터 도움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가족들에게 노인을 버리라고 한
후 호적을 이전시켜 독립가구를 만들어주고, 몇 개월 후 보호시설에
넘기는 편법까지 쓰고 있다.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우리나라
실정이다. 가난한 노인들은 '자식 있는 게 죄다, 무자식이
상팔자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자식이 없으면 좋은 시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노인들도 품위 유지를
위해 용돈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부모 용돈까지
뒷바라지하는 것은 힘들다고 항변한다. 정부가 70세
이상(생활보호대상자는 65세 이상)에게 지급하는 경로연금제도를 잘
활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는 경로연금을 10만~15만원으로
늘리자는 주장에 예산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 동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도 돌보겠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노인들의 의료문제도 심각하다. 가족 없는 노인은 입원해 수술을 받을
때도 순서에서 밀린다던가, 불친절한 대접을 받는다던가 하는 차별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 40~50대 ‘빈곤 노인’ 될 가능성 높아

=요즘 우스개로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45세가
정년이요, 56세까지 있으면 도둑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연금제도는
우리가 55~60세까지 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지금 일자리에서
쫓겨 나는 나이는 40~50대이다. 결국 이 연령대의 사람들은 60이 넘었을
때 고스란히 빈곤 노인이 된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난국을 겪었던
이 연령대의 사람들은 결국 지금의 70~80대 못지 않은 곤란함을 겪을
것이다.

=임금 피크제(일정 연령이 지나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줄이고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임금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 70대는
예전 60대만큼 건강하다. 늦게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일괄적으로 정년을 정할 것이 아니라, 기능별로 정년을 조정해야 한다.

=결국 노인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70대 이상 노인에게는 경로연금을
확대해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더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60대에게는 일거리를 주는 것이다. 전화상담을 하는 노인들은
자원봉사라도 좋으니, 매일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주택신탁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원·공무원 등 연금
수혜자를 제외하고는 노인이 무슨 돈이 있겠나.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뿐이다.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금융기관에 신탁한 후 매달 돈을 받아쓰는 제도가 있다. 죽을 때까지
집의 가치에 해당하는 돈을 다 못 쓸 경우에는 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거나 복지기관에 희사한다.

◆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 줘야

=고령자 고용을 얘기하면 청년실업도 심한데 일 빼앗아간다고 말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가 굳이 안 해도 되는 부분들, 특히 사회에서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노인들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재 보호,
숲 해설가 등 사회에 공헌할 수 있고,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을 노인들에게 주어야 한다. 즉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고령자 취업에 관한 다양한 대책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시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정부가 말로만 고령자 일자리
50만개 창출을 외칠 것이 아니라, 단 5개라도 우선 직종을 정해 정부
관련 공단에 적용해 먼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서 노인 문제는 정부 전 부처가 나서야 할 문제이다. 우선
인력관리공단을 마련해 노인 재고용을 통해 노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고, 두 번째로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 해줘 노인들이 여가선용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노인의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 효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피보호자가 보호자보다 강한 척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자식을 돕지는 못할망정 자식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노인 자신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효는 의무나 책임을 떠났다. 내가 자식에게 어떻게 했느냐가 효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한다. 싱가포르의 부모부양법도 부모가
자식을 학대했을 경우 자식이 부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물론 그 이외의 경우, 자식들은 부모를 부양해야만 한다. 이
시대에 효라는 것은 결국 상호 호혜적인 것이다.

●姜炳萬 한국 노인의 전화 사무국장
●金美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徐惠京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崔聖載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