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들 사이에 ‘신판 3개 대표이론’이 나돌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당 개혁론인 3개 대표이론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퇴치의 영웅 3명을 가리키는 엉뚱한 쪽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위 사스 항전 3대 영웅이라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우이(吳儀) 부총리 겸 위생부장이 중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3개 대표’라는 설명이다.
‘당이 선진 생산력과 선진 문화, 광범위한 인민대중의 근본 이익 등 3가지를 대표해야 한다’는 장 전 주석의 3개 대표이론은 사영 기업인에게 당 문호를 개방, 당의 계급적 토대에 변화를 가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은 마오쩌둥(毛澤東)의 계급 투쟁론이나 덩샤오핑(鄧小平)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만큼 인민들에게 쉽사리 각인되지 못하고 있다. 식자층 중에서도 이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이론을 희화화한 신판 3개 대표이론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신판 3개 대표이론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후 주석이 주도권을 쥔 현 최고지도부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정합관계를 이루지는 않지만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외국인들은 상당수가 친중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이전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비판하더라도 중국 공산당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반면, 현 지도부를 비판하는 외국인들은 신판 3개 대표이론에 코웃음칠 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 자체를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당국의 사스 통계를 믿지 않으며 관영매체들이 사스 방역에 투입된 의료진을 ‘백의의 천사’라고 홍보하는 것도 시대에 뛰떨어진 공산당의 유치한 선전술 정도로 치부한다. 대체로 반중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중국 관리들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경찰국가로 비유되는 공권력 과잉, 인권탄압 등을 화제에서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친중파든 반중파든 중요한 것은 중국 인민들의 입장이다. 중국은 정치문제에 대한 여론조사가 불가능한 통제사회이다 보니 광대한 지역의 수많은 인민들 생각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인민들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신판 3개 대표이론이 떠도는 것 자체가 현 지도부에 대한 우호적 시각이 적지 않음을 반영한다. 실제로 중국 사람들을 만나보면 상당수가 현 지도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이 외국인에게 솔직하게 속내를 내비치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국인들은 이전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변해 있다.
후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4세대 지도부가 출범 석 달 만에 인민들의 호평을 받는 이유는 정치가 인민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실용적인 자세 때문이다. '무실(務實)'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런 자세는 '국가 지도자 보도를 줄이고 인민의 보도를 늘리라', '인민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실제 생활을 이해하라', '간부들은 법대로 시행하고 절약하고 분투하라'는 등의 여러 지침들을 만들어냈다. 당지도부가 당정(黨政) 지도부의 출입국시 송영(送迎) 행사를 없애버린 최근의 조치도 작지만 대단히 중요한 변화다.
중국은 사스 덕분에 이미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도부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결사적인 자세로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이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원 총리가 사스 걱정으로 잠자리에 들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우 부총리가 사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제 없이 잠 못 이룬다고 토로한 것을 중국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스로 인해 국력을 집결하고 지도부와 인민의 간격을 좁히는 소중한 경험을 한 셈이다. 중국의 사스 상황을 지켜보며 경제적 손실에만 주목하는 사람들은 사스 시련을 통해 훨씬 강해지고 있는 중국의 이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경 여시동 특파원 sdy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