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부도, 어떤 정권도 국민을 배고프게 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 만약
다음 세대를 배고프게 한다면 더더욱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어떤 수식어를 붙여 무슨 말을 하여도 국민을 배고프게 한다면,
정부로서, 정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들은 점점 더 배고파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들은 지금보다 더 배고파질지 모른다는 우려감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후 100여일의 짧은 기간에 경제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국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는 듯한 상황에서 국민이
정부정책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 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면 정부는 어떠한 정책도 제대로
실시할 수가 없다. 더욱이 정부정책이 이익단체의 투쟁에 따라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이상 정부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부의 신뢰회복이 모든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국민과 정책당국자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서서히 침몰의 늪으로 빠지고 있으며,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서민경제가 붕괴하고 영세 자영업자가 속속 무너지는가 하면 기업들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데,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기업과 기업주에
대한 반감마저 확산되고 있다. 이제까지 국민들에게 일자리나 소득을
제공해 본 적이 없이, 평생 동안 돈을 써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을 미워하며, 기업인을 죄인인양 취급하고 있다.

'곰'이 재주를 넘어야 '왕서방'이 돈을 번다. 그런데 지금 '곰'은
지쳐 쓰러져 가는데, '왕서방'들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뢰회복을 위한 두 번째 단계는 처절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위기대책기구를 구성하는 단계이다. 정부의 경제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위기대책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경제운영의 컨트롤 타워(사령탑)로
만들어야 한다. 이 컨트롤 타워에는 경제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문제를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전권(全權)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권한은 경제 부총리의 책임 하에 명확한 정책판단의 기준으로
일관성 있게 행사되어야 할 것이다. 이익단체의 이기적 주장이나
아마추어식 감상논리,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의 주장에 일일이 대꾸하지
말고, 힘 있다는 경제 비(非)전문가가 아무리 흔들어 대도 한치의
비틀거림이 없어야 한다. 어쩌면 이 컨트롤 타워의 사령탑의 조건은
전문성보다 우직성이 더 큰 덕목일 수도 있다.

세 번째 단계로 이 컨트롤 타워는 시중에 떠도는 약 400조원의
부동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시키는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동안 소비거품을 조장하고,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내던 자금을
기업들 투자자금으로 이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당국자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을 합창하여 인위적으로 자금의 흐름을 바꾸려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의 투자심리가 살아나도록 노사관계에서 타협의 원칙보다 경쟁력
제고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도
철폐하여야 한다. 이와 동시에 회계기준의 투명성 강화, 부당 내부거래의
단절, 그리고 상속세 관련 법령 정비 등의 기업개혁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예측가능한 방법으로 흔들림없이 실천해나가야 한다.

경제가 위기국면으로 서서히 가고 있음에도 불구,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이란 고작 금리를 내리고 추경예산을 편성키로 한 정도다.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과는 거리가 먼 일들뿐이다. 지금은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신뢰회복을 위한 고단위 처방을 내려야 할
시기이다.

(강석훈·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