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만 입고 뛰어다녀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깜둥이 꼬마 시절에 만화경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의 장난감 카메라 같은 조악한 기계에 눈을 대고 버튼을 누르면 찰칵찰칵하고 신기한 볼거리들이 차례차례 보여지는 것이었는데 슬라이드에 담긴 신기한 세계는 참으로 나를 유혹했다. 1원짜리 동전을 용돈으로 받으면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만화경 아저씨를 기다렸다가 만화경을 정신없이 보곤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만은 만화경의 내용이 통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 때인가 만화경에서 손을 뗀 것은 만화경 자체가 시시해졌다기보다는 매번 같은 내용에 질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만화경을 좋아했던 탓이지 나는 커서 결국 만화가가 되었다.
내게 있어서 만화라는 작업은 신명이다. 한번 신바람이 나면 밤을 꼬박 새워서 이야기의 끈을 쫓아간다. 밤의 고요함이 집중력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번 잡은 신명을 놓치기 싫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그렇게 밤을 새워도 내 작업에 질리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매번 새롭게 꾸미는 소재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작품도 속편을 만들지 않았다. 한 번 다룬 소재는 내 스스로가 흥미를 잃어버려서 야구를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엔 권투를 다루고 스포츠가 지겨워지면 SF를 다뤘으며 그것도 지겨워지면 아득한 상고사로 가버린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 세상살이가 궁금해져서 신문을 본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신문을 찾게 되었고 내 돈으로 처음 구독한 신문이 조선일보였다.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배달되는 신문을 집어들 때의 기분이란 참으로 좋았다. 코끝에 스치는! 그 상큼한 잉크냄새, 윤전기의 열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종이의 따스함.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그 많은 정보들. 새벽 커피향과 함께 글자 한 자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아침해가 따갑게 방안을 비추고 비로소 밀려오는 피로와 함께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그 정보의 충만함에 만족하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내게 있어서 조선일보는 가장 만족감을 주는 만화경이었으며 그 조선일보가 있어서 나의 새벽은 언제나 행복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조선일보에게도 한 가지 불만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신문의 보수성이 아니었나 싶은데 일년 내내 만화에 대한 기사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5월이 되면 만화가 아이들에게 끼치는 폐해가 심각하다거나 그래서 어디어디에서 불량만화 몇천 권을 소각시켰다느니 하는 징그러운 기사만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아아…. 이놈의 신문은 언제쯤 만화를 긍정적으로 다뤄주는 기사를 쓸래나!” 이것이야말로 만화를 그려서 겨우 입에 풀칠하는 한 젊은 만화가의 짝사랑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인가 조선일보 한 귀퉁이에 만화 외인구단에 대한 기사가 한 줄 나왔고 감동으로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밤을 새며 맥주 2박스를 부어넣었다. 그것이 인연인지 나중에 결국 맥주광고까지 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사회의 완고한 보수성은 존재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힘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라건대 가끔 한번은 조선일보의 어느 한 조그만 귀퉁이에 그 사람들을 찾아내고 격려하는 글이 실렸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도 분명 조선일보의 한 줄 기사를 목말라 할 것이기 때문에….
(이현세 만화가)